‘위기 탈출’ 중국 광둥성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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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 인근 신탕의 인력시장에서 공장 인사팀 직원들이 구인 정보를 내걸고 구직자를 기다리고 있다. 기업들의 구인난은 중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둥성 AP=연합뉴스]

중국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시 쑹산후(松山湖) 과학기술단지에 위치한 ATL사의 요즘 사시(社是)는 ‘변(變)’이다. 전 직원이 매일 아침 ‘변화’를 외치고 일을 시작한다. 이 회사는 지난 1년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매출이 이전보다 30%나 줄었다. 전기버스용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에 관한 한 세계 최고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언제 해외 경쟁업체에 따라 잡힐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크다.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점을 전 직원이 절감하고 있다.

황스슝(黃世雄) 부사장은 “금융위기로 얻은 교훈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행히 사원들이 몸으로 위기감을 느끼면서 연구와 업무에 더 적극적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0여 명의 연구원이 평소 하루 10시간 정도 연구했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연구시간이 15시간으로 늘었다”며 “그 결과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100AH/360V형 배터리는 세계 최초의 버스 내장형 배터리로, 한 번 충전으로 4시간 운행이 가능하고 가솔린 엔진과 병행할 경우 20%까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금융위기 이후 둥관시 정부도 달라졌다. ‘친기업’과 ‘현장 행정’을 내세우고 있는 리위취안(李毓全) 시장은 하루를 기업 방문으로 시작해 하루 평균 10여 개 기업을 돌아본다. 리 시장은 “그냥 기업을 위로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게 아니다”며 “기업들에 변하되 최고 기술력을 갖춘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변해 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금융위기 이후 시장경제 원리도 더욱 공고해졌다. 기업이 망한다고 시 정부가 돕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1년간 둥관시에서 1만여 개 크고 작은 기업이 도산했지만 시 정부의 도움을 받은 기업은 5%도 되지 않는다. 국제 경쟁력이 있는 기술을 가진 기업만 구제를 받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광둥성의 기업들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후이저우(惠州)시에 위치한 가전업체 TCL 전시장. 이 회사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미래형 입체TV가 전시돼 있다. 42인치형 이 TV는 특수 안경을 쓰지 않고도 2m 거리에서 선명하게 입체 화면을 즐길 수 있는 세계 최초 제품이다. 가격이 18만 위안(약 3240만원)으로 워낙 비싸 주문 생산을 하는데, 금융위기에도 올 초부터 주문이 늘고 있다. 왕진톈(王錦添) 인사 선전부 부부장은 “지금은 삼성 등 세계 유수 전자업체와 협력관계이지만 몇 년 후에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선전시 룽강(龍崗)구에 위치한 BYD 자동차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기술에 미래를 걸고 있다. 이 회사의 최신형 자동차인 F6 CVT의 경우 집에서 충전이 가능하고 시속 150㎞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한 번 충전으로 580㎞까지 운전이 가능하다. 왕룽(王榮) 선전(深) 시장은 “중국 경제의 미래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얼마나 나타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광둥성=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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