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택의 ‘빈곤 효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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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호 30면

가계자산 회복이 미국 경제가 다시 살아나는 데 주요한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집’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최근 친구나 이웃으로부터 어지간한 값에 집을 샀다거나 팔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지금 대다수의 미국인은 마음 속으로 은퇴 자금을 계산하거나 조용히 일상을 꾸릴 뿐이다. 쇼핑센터에 가서 보트를 사고, 평면TV를 살 계획이 없는 것 같다. 미국인은 지금 역(逆) ‘부(富)의 효과’(부동산·증권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도 증가하는 현상)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빈곤의 감각’이 섬뜩하게 밀려온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빈곤 효과’라고 해야 할까.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은 가구당 5만4000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모기지은행연합회에 따르면 미국 모기지론 연체율은 지난 상반기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더욱 불길한 징조는 모기지 연체가 늘어나는 속도가 최고에 달했다는 점이다. 모기지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재무상태가 양호한 개인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대출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만약 실업률이 지금보다 높아지고 주류 산업이 계속 침체를 겪는다면 미국의 가계자산은 더욱 황폐해질 게 뻔하다.

최근의 디레버리지(부채 축소) 현상은 개인 소비가 줄어드는 것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지난 약세장에서 자신의 은퇴 자금이 사정없이 줄어드는 것을 경험한 미국인들은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현재의 가계자산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미래 자산에 대한 기대와 확신도 무너졌다.

집을 마련하느라 돈에 쪼들리고 있는 이른바 ‘하우스 푸어’는 사정이 더 나쁘다. 집을 몽땅 날린 경우도 있고 다시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이들이 다시는 상점 앞에서 가전제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설 수 없으며, 대학교육을 위해 돈을 빌릴 수 없고, 여유로운 은퇴 설계를 할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전통적인 부 창조 시스템은 이미 붕괴했다. 요컨대 미국에서 집을 사는 것이 더 이상 ‘투자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얘기다. 국제신용상담협회 설문조사에 의하면 이제 절반 가까운 미국인은 자기 집을 소유하는 것이 부를 쌓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을 믿지 않는다.

주택과 경기 흐름에 대해 긍정적인 보고서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는 분명히 터닝 포인트에 도달했다. 실제로 일부 미국인은 정부가 보증하는 양도성 예금증서(CD), 머니마켓펀드(MMF), 그리고 고금리 단기 기업채권 혹은 지방채 등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미국 정부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어떨 때는 ‘간접적으로’ 이런 저축과 투자를 훼방 놓고 있다. 현재 저축과 비지방채 투자 등에는 여전히 최고 세율이 적용된다. 이런 정책은 문제가 있다. 부의 효과 없이는 건전한 경제를 꾸리기 어렵다. 투자 수익이 기대되지 않는데 누가 자유롭게 지갑을 열겠는가.

지금은 ‘최고의 재산 창조기구’였던 부동산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특별한 디레버리지의 시대엔 의회가 나서야 한다. 법을 바꿔 개인 투자가 더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독려해야 한다. 저축과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면세 혜택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의미 있는 경제 회복을 원한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빈곤 효과’는 어렵게 찾아온 회복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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