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2국' 용사 이세돌의 굴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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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2국
[제8보 (138~150)]
黑.이세돌 9단 白.이창호 9단

가슴 섬뜩한 이세돌9단의 흑▲가 최후의 타협을 요구하고 있다. 국면은 마주 달려오는 두 열차를 보는 듯하다. 이창호9단이 장고하는 사이 검토실에선 빠르게 수를 분석하더니 '패'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창호가 진로를 바꾸지 않으면 천지가 뒤집어지는 대패가 난다고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창호는 이런 파국의 흐름을 생리적으로 피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창호는 138로 직진했다. 139로 끊자 다시 140. 단호하게 타협을 거부하는 이창호의 모습에 검토실은 할 말을 잊었다. 후퇴를 모르는 이세돌이 진로를 바꿀리는 없다. 그렇다면 혜성 충돌과도 같은 비극이 벌어지겠지. 이제 마지막 선택은 이세돌에게 넘어갔다.

전면 충돌의 수순이 '참고도'다. 흑1부터 일단 결행하면 쌍방 피할 수 없는 외통이고 흑7의 절단에서 중앙 백의 포위망은 연단수에 걸려든다. 잡히면 공격군의 주력이 전멸하고 바둑도 끝난다. 그러나 백에겐 8로 따내는 패가 숨통이다. 이 패가 어떻게 되느냐! 긴장 속에서 하회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이세돌이 진로를 틀었다. 그의 손이 141에서 멎었다. 이창호의 강력한 살의에 용사 이세돌이 굴복했다. 패는 나지만 어떤 팻감도 소용없는 만패불청. 단 한 팻감도 없다는 것. 이것이 이세돌의 피눈물나는 후퇴의 사연이었다.

141은 단지 목숨만 구하자는 수다. 이 대목에서 이창호는 드디어 돌부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삶을 허용했다. 그러나 흑은 두 수를 두어 세 집을 지었을 뿐이니 그 구차함은 죽음과 큰 차이가 없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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