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생색만 낸 민생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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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윤 경제부 기자

"전세 보증금을 깎아줘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는데 집주인에게 2000만원을 빌려준다고 역(逆)전세 문제가 풀리겠습니까."(서울 강동구 둔촌동의 한 공인중개사)

"이혼이나 가계 파탄으로 위기에 몰린 가정에 두달간 월 43만원씩 지원한다고 과연 생활이 나아질까요."(안양시의 한 사회복지사)

정부가 지난 13일 경제민생점검 회의에서 밝힌 '7개 분야 서민.중산층 생활안정대책'을 접한 두 시민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정부는 이날 '비상한 각오'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13개 부처가 내놓은 수십가지의 대책을 발표했다.

요즘처럼 경기가 나쁠 때 가장 고통받는 계층은 돈 없는 서민들이다.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이들을 위해 무언가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짜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막상 나온 대책은 여전히 '생색내기용 종합선물세트'식 지원방안들뿐이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효과는 의심스럽다.

예컨대 이혼으로 가계가 파탄 난 가정에 월 수십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두달 동안 준다고 이들 가정이 파탄상태를 벗어날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원 대상을 어떻게 가려서 돈을 주겠다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급한 대로 일단 2개월간 생계비를 지원하고 이 기간에 사회복지전문요원이 상담해 앞으로 추가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지만 어떤 기준으로 가계 파탄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인지부터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두달간 돈을 주겠다는 것뿐이다.

다른 대책들도 여기저기에 찔끔찔끔 돈을 대주겠다는 것이 많다. 차림표만 화려할 뿐 기존의 대책들을 끌어모은 게 대부분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사회복지사는 "지금 빈곤층이 원하는 것은 선심성 돈 몇푼보다는 땀흘려 일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자리"라고 말했다.

일자리가 많아지려면 부자들이 소비를 늘리고, 기업들은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와 투자는 답답할 정도로 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원이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들이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한다.

빈곤층을 위한 근본대책은 구휼책(救恤策)이 아니라 마음 놓고 소비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일이라는 얘기다.

김종윤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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