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쓴소리’해도 필요한 사람은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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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히든 카드는 ‘정운찬 총리’였다. 정 총리 후보자는 현 정부 출범 초부터 줄곧 총리 감으로 거론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후보자가 실제 내정되자 여권에선 ‘파격’이란 평가가 나온다.

왜 파격일까. 정 후보자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거리를 둬왔다. 특히 이 대통령의 핵심 어젠다인 4대 강 살리기 등에 대해 “토목건설 중심의, 과거 패러다임과 가깝다”는 비판도 마다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3일 정 후보자의 내정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경제비평가로서 건설적 대안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경험이 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청와대 수석들도 “정 전 총장이 총리가 되면 과거와 입장을 바꿔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은 이런 참모들의 허를 찔렀다.

그렇다면 왜 정운찬인가.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과 친서민, 국민통합, 경제 살리기 등 국정의 핵심 어젠다에 모두 맞는 적임자를 선택했고, 정 후보자도 고심 끝에 총리직을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정 후보자는 한때 민주당의 2007년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됐었다. 보수보다는 진보적 이미지가, 안정보다는 변화와 개혁적인 이미지가 더 각인돼 있다. 정 후보자의 걸어온 길이 최근 이 대통령의 중심 화두인 ‘중도실용주의’와 ‘친서민적’ 기조와 일맥상통한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정 후보자 도 3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쟁을 촉진하되 뒤처진 사람에 대해 따스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점에 이 대통령과 내가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가 충청 출신이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점도 이 대통령이 공을 들여온 ‘국민통합과 지역화합’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서울대 총장으로서 보여준 조직 관리와 행정 경험, 경제학자로서의 실력은 이 대통령이 일상적 행정 업무나 정책 업무를 정 후보자에게 맡기고, 보다 큰 국정과제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의 장점이 있다. 정 총리 후보자 내정을 통해 이 대통령은 ‘통합’ ‘변화와 개혁’ ‘중도실용’이란 스스로의 자리매김도 더욱 탄탄히 굳힐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대통령이 ‘차기 대선 후보군’의 한 사람으로 정 후보자를 발탁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여권 주류에선 그간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수 있는 잠재 후보군을 여럿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했었다.

이 때문에 향후 그의 ‘총리 행보’는 정치권의 적잖은 관심을 받게 됐다. 현역 의원 3명을 장관에 임명, 그간 거리를 둬왔던 여의도 정치와의 소통을 강화한 것도 이 대통령의 기존 인사스타일에서 벗어난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 또는 ‘외교 대통령’에서 ‘정치 대통령’으로 변신 중”이라고 이를 요약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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