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의 책vs책] 남자의 폭력 뒤에 숨은 본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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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같은 남성
원제 Demonic Man
리처드 랭햄.데일 피터슨 지음, 이명희 옮김
사이언스 북스, 398쪽,1만원

폭력과 여성들
원제 De la Violence et Des Femmes
세실 도팽 외 지음.이은민 옮김
동문선,212쪽1만8000원

내가 사는 도시 한가운데는 작은 산이 있다. 아파트 단지들에 에워싸여 있고, 늘 오가는 사람이 많으며, 고작 해발 80m쯤 되는 그 산을 놓고도 한증막 아주머니들 사이에는 괴담이 오간다.

“혼자 산에 갔던 어떤 새댁이…”로 시작되는 괴담은 항용 남성의 폭력과 피해자인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고, 아주머니들의 표정에는 어두운 공포가 깃든다. 나 역시 자주 그 산을 오르는데 간혹 흐린 날이나 나무 그늘이 짙은 지점에서 근거 없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악마 같은 남성』. 요즈음 뉴스를 보면 절로 이 책이 떠오른다. 미국의 인류학자와 동물학자의 공동 저술인데, 두 저자는 이 책에서 남성들의 폭력성을 연구하고 있다. 구타·고문·살인·전쟁·성폭행·시체 토막내기 등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적인 행위의 대부분은 남성의 짓이다. 남성은 왜, 언제부터 그토록 폭력적인가. 이 책은 침팬지 수컷의 습성을 통해 남성이 어떻게 폭력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는지를 밝히고, 인류학적으로 남성들이 어떻게 공격적인 연합을 형성하여 집단을 수호하기 위해 싸웠는가 하는 점을 상호 보완적으로 서술한다.

책에 의하면 남성들은 오직 힘에 대한 욕망을 가지도록, 점점 폭력적이 되도록 진화해 왔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에, 후손 번식에, 더 많은 자유와 명예를 획득하는 데 유익한 전략이었다. 거기에 사유 재산제가 만든 시기심, 여자의 ‘소유’를 두고 빚는 질투의 감정이 가세하면 남성의 폭력성은 거의 악마성을 띠게 된다. 현대로 접어들면 새로운 무기·전략·속임수 등을 개발하면서 폭력성은 지능화된다.

남성에 비해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현저히 힘이 약한 여성은 폭력적인 남성과 살기 위해 어떻게 했을까? 저자들은 여성의 경우 살아남기 위해 암컷 고릴라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질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고 주장한다. 남성의 폭력성을 두려워하면서 가부장제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생존법인 것처럼. 그러면서도 여성은 한편으론 레트 버틀러처럼 강한 남성, 폭력성을 드러내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가장 폭력적인 남성이 가장 훌륭한 보호자가 되며, 그래야 훌륭한 자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남성의 폭력성을 강화해온 데는 여성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온유함과 평화적 기질 역시 진화의 산물일 뿐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폭력과 여성들』이라는 책에 있다. 이 책은 프랑스 역사 연구소가 ‘여자들의 역사’라는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11편의 논문을 싣고 있는데 여성의 폭력과 여성에 대한 폭력 모두를 고찰하고 있다. 여성의 폭력성이라는 ‘낯설고 불편한 주제’에 대한 연구가 먼저 제시되는데 저자의 태도가 몹시 조심스럽다. 여성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행위가 반 페미니즘적으로 보일까봐,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까봐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무색하게 여성이 행하는 폭력에 대한 사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의적 주체로서의 폭력적 여성 사례, 프랑스 혁명 중 단두대 앞에 모여든 서민층 여성들의 폭력에 대한 연구가 전부이다.

그 외에는 자식들에게 교육의 명목으로 행해지는 어머니의 폭력, 유쾌함을 불러일으키는 시장거리 여자들의 싸움 정도가 언급된다. 그것들은 여성들이 살아가는 문화적 조건에서 발생하는 폭력성인 셈이다. 그러니까 여성의 폭력은 문화적 산물이고 여성의 온유함은 진화적 산물이다. 남성의 온유함이 문화적 산물이고 남성의 폭력성이 진화의 산물이듯이. 책의 나머지 대부분은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사회적·정치적 폭력을 고찰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남자들은 모를 것이다. 여성들이 느끼는 ‘정상적인’ 공포심에는 남성들의 잠재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있다는 것을. 그 공포심은 인류의 유산이면서 동시에 현실적 체험이기도 하다. 여성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대부분이 창밖에서 엿보는 남성, 골목에서 지갑을 빼앗은 남성, 사랑의 이름으로 폭력적인 남성, 가부장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나 오빠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 작가 스트린드베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남자들에게는 변명할 권리가 없는데 여자에게는 실컷 신음할 권리가 있다니!”

남성들도 가끔은 자신들의 폭력성이 두려운 모양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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