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 사물놀이,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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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사물놀이패의 신명나는 농악 장단에 죽은 나무에서 잎이 돋고 꽃이 피었다. 살아있는 사물놀이패는 아날로그, 홀로그램인 나무는 디지털이다. [김성룡 기자]


1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디지로그 체험관인 ‘UX 스튜디오’. 무대에 앉은 김덕수 사물놀이패 사이로 훤칠한 서양 여성이 등장했다.

장구와 꽹과리 사이, 배꼽티에 짧은 반바지 차림의 금발 여인이 다리를 번쩍 들어 춤추기 시작했다. 몸 안의 에너지를 태우듯 격렬한 서양의 동작이 경기도당굿과 같은 한국의 무속 리듬과 이루는 묘한 조화였다.

사물놀이패의 장단은 죽은 나무도 되살렸다. 놀이패 사이에 나타난 헐벗은 나무 한 그루가 힘찬 농악가락에 따라 잎이 돋고 꽃을 피웠다. 나무를 사이에 두고 한국의 전통 무용수와 서양의 댄서가 함께 나와 각자의 방식으로 생명을 되살리는 장면이 연출됐다.

출연자 중 살아있는 생명체는 사물놀이패 네 명과 한국의 무용수 뿐이었다. 서양의 여인과 살아나는 나무, 꽃 등의 이미지는 입체 영상인 홀로그램으로 제작됐다.

◆‘디지로그’란?=이날 공연은 온·오프라인 통합 교육기관인 창조학교의 첫 강의였다.

창조학교의 명예 교장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우리의 강의는 말과 책, 파워포인트 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디지로그 사물놀이’에서처럼 함께 느끼고 설레며,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디지로그와 창조 정신’을 전하기 위해 설립된 창조학교에 대해 ‘디지로그가 무엇인지’ 묻는 이들에게 실제를 보여주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그는 디지로그 사물놀이가 “아날로그 공간에서 자란 우리의 사물놀이가 서양 문명에서 탄생한 디지털과 만나는 순간 만들어지는 4차원의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컴퓨터는 사람의 다섯 감각 중 청각과 시각 만을 자극한다. 모든 감각을 쓰는 사물놀이가 현대인의 아날로그 결핍증을 치료한다”는 것. 첫 강의에 디지로그 사물놀이가 선택된 이유다. 여기에 디지털 디자인 업체인 ‘디스트릭트’가 기술과 장소를 제공해 이날 공연이 성사됐다.

◆각 분야 멘토와의 강의=50년동안 장구채를 잡았던 김덕수(57)씨는 “홀로그램과 함께 공연한 것은 처음”이라며 “자연과 인간의 힘으로 황폐한 문명을 치유한다는 의미를 전할 수 있어 뜻깊었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그는 창조학교의 멘토로, 50~120명의 학생을 지도하게 된다.

이날 첫 강의에는 창조학교 관계자 40여명과 학생 10여명이 참석했다. 학생으로 등록한 강신우(22·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씨는 “우리 젊은이들이 앞으로 해야할 일을 보여주는 자리였다”며 “지식 보다는 정신을 배우게 될 창조학교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시인 김남조, 소설가 박범신, 지휘자 금난새, 뮤지컬 연출가 윤호진씨 등 멘토들은 앞으로 온라인(www.k-changeo.org)에서 멘티(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토론과 강의를 이어간다.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 있는 폐교를 리모델링해 다음달 오프라인 캠퍼스도 연다.  

김호정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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