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맥짚기] 졸속 행정에 준법자만 불이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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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 양천구 신투리지구 앞 한 부동산중개업소는 건설업체 담당자와 짜고 위장해약 수법을 통해 수억원의 채권액을 챙겼습니다." "지난해말 건설교통부에 비리 사실을 알렸는데도 소관사항이 아니라며 묵살하고 말았습니다." 부인이나 친.인척 등을 동원한 위장해약 수법으로 국민주택채권을 빼내가고 있다는 보도가 나가자 여기 저기서 비리 제보가 터져나왔다.

어느 아파트는 어떤 부동산업소가 독차지 하고 있고 일을 잘 처리하려면 건설업체 누구를 통해야만 한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전화번호가 적힌 입주예정자 명단을 구하는데 얼마를 주었다는 등의 채권액 빼돌리기에 동원된 각종 수법을 고발하는 전화가 쇄도했다.

이 가운데 사정이 어려워 위법인줄 알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방법을 썼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동산업자와 건설업체 담당자가 결탁한 증거자료를 전부 넘겨주겠다는 제보도 잇따랐다.

"건교부에 정책의 헛점을 이용해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제보해도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되레 면박을 주었고, 국민주택 기금 관리는 주택은행이 도맡아 하고 있다는 책임회피에만 급급한 공무원들의 대민 자세에 더욱 분통이 터졌다" 는 목소리도 높았다.

독자들은 주택경기 활성화 방안이 규정을 잘 지킨 선량한 수요자들에게 되레 상대적 불이익을 주는 졸속행정의 헛점이 드러났는데도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건교부 공무원들의 강압적인 자세에 더욱 분노를 느끼는 반응이었다.

모름지기 정책은 특수상황보다 보편적인 시각에 촛점을 맞춰 입안돼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채권액 빼먹기 수법도 IMF체제가 몰고 온 아주 이례적인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이번 사안은 사전에 철저하게 따져봤다면 능히 헤아릴 수 있는 내용이었다는 지적이 많고 특히 재발방지를 위한 대응책이 너무 미흡했다는 목소리가 의외로 컸다.

물론 건교부는 위장해약자를 가려내 위법사실이 드러나면 환불해간 채권액을 환수하는 것은 물론 이에 마땅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밝혔지만 채권액 빼내기 수법의 진원지인 건설업체와 중개업자들의 결탁 사실을 철저히 가려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게 기금조성에 동참한 일반 국민들의 바람이다.

아무튼 당국은 이번 일로 그동안 정부 시책에 순순히 따라준 선량한 일반 수요자들이 받게 된 심한 허탈감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최영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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