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후세인왕이 남긴 빈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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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7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세계는 후세인왕이 중동평화에 기여 (寄與) 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는 한편으로 후세인왕 사후 (死後) 중동에서 일어날 정세변화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후세인왕은 지난 52년 17세에 왕위에 올라 46년간 통치해 왔다.

인구 4백60만명,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약소국 요르단이 주변 강국들 틈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영도력 덕분이다.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한 중동 정치구도에서 후세인왕은 외교적으로 '균형추 (均衡錘)' 역할을 함으로써 존재가치를 높였다.

생전에 후세인왕이 '줄타기 외교의 명수' 로 불렸던 것은 그 때문이다.

후세인왕은 50년대 아랍민족주의가 판을 칠 때 친서방노선을 펴고, 요르단을 이스라엘 공격기지로 삼으려는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무자비하게 추방했지만, 91년 걸프전 때는 중립을 표방하면서 이라크 편을 들었다.

그러다가 94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10월 미국 와이밀스에서 열린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 난관에 봉착하자 암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해결사로 나서 협상을 성사시켰다.

후세인왕이 남긴 공백은 크다.

우선 내정 (內政)에서 압둘라 신왕 (新王) 이 제대로 지도력을 발휘할까 하는 문제다.

34년간 왕세자였던 삼촌 하산 왕자 대신 지난달 갑자기 후계자가 된 압둘라 신왕은 육군소장으로 군부 인맥은 두텁지만 선왕 (先王) 과 같은 카리스마는 결여돼 있으며, 통치능력도 의문이다.

하산 왕자는 일단 조카의 왕위 계승을 인정했지만 일부에선 쿠데타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또 그동안 후세인왕의 강압에 눌려 침묵하던 이슬람 원리주의세력의 움직임도 주목거리다.

더 큰 문제는 후세인왕의 죽음이 중동평화 구도에 미칠 영향이다.

현재 가장 큰 불안요인은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 (西岸) 으로부터 이스라엘군 추가 철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와이밀스협정 이행을 둘러싼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대립이다.

오는 5월 실시될 이스라엘 총선에서 추가 철수를 반대하는 강경파가 승리할 경우 와이밀스협정은 파기 (破棄) 될 것이 뻔한데, 후세인왕과 같은 힘있는 중재자 (仲裁者) 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후세인왕의 죽음으로 아랍권 지도자들의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현재 주요 아랍국가 지도자들이 대부분 70세를 넘긴 노령 (老齡) 이어서 앞으로 이들의 후계를 둘러싸고 정치적 불안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후세인왕의 죽음은 앞으로 중동정세에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변수 (變數) 다.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가 아니라 평화의 땅이 되도록 하는 성실한 노력만이 후세인왕이 남기고 떠난 자리를 메우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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