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의 파리에세이]프랑스국민 기살린 영화 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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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로마인들이 갈리아라고 불렀던 프랑스 땅의 원래 이름은 골이었다.

프랑스인의 시원 (始原) 은 그래서 골족 (族) 이다.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는 골족을 표상하는 두 인물이다.

40년전 만화의 주인공으로 처음 탄생했다.

두 인물이 등장하는 만화가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나 읽는 '국민만화' 가 되면서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는 골족과 동의어가 됐다.

만화를 영화화한 '카이사르와 싸우는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란 제목의 영화가 지난주 개봉됐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에 맞서 이들이 벌이는 통쾌하고 코믹한 투쟁이 기본 줄거리다.

프랑스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인 2억7천4백만프랑 (약 5백76억원) 이 투입됐다.

'카이사르와…' 는 미국 영화에 대한 프랑스 영화의 마지막 자존심을 대변하고 있다.

골족이 로마에 저항했듯 이 영화로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는 전기를 마련해 보겠다는 것이다.

골족의 국민적 자존심이 발동했는지 개봉 첫날 입장객수가 44만6천명으로 역사상 가장 많았다.

위베르 베드린 프랑스 외무장관은 최근 미국을 '하이퍼 파워' 로 규정했다.

흔히 쓰는 '슈퍼 파워' 라는 말로는 오늘날 미국이 국제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행사하고 있는 압도적 지배력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세력은 항상 다른 세력에 의해 균형이 유지돼 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며 이 점이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 그의 상황 인식이다.

프랑스는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일방주의' 에 맞서 '다원주의' 를 전파하는 전도사 역을 자임하고 있다.

과연 아스테릭스의 지혜와 오벨릭스의 힘으로 카이사르보다도 더 강한 미국에 맞설 수 있을 것인지….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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