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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탐방] 상. 미국경제 활황, 언제까지 지속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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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2일 폐막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선 각국이 금융감독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 임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미국처럼 제대로 경제를 운영하면 무엇이 문제냐" 는 식이다. 세계경제를 끌고가는 유일한 기관차임을 자처하는 미국에선 요즘 '불경기는 사라졌다' 는 말이 유행하고 인터넷 관련 종목들의 주가는 하늘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월가 현지 취재를 통해 미국경기.주가상승의 배경을 짚어보고 한국등 신흥시장에 대한 시사점을 3회에 걸쳐 알아본다.

지난달 28일 미 CNBC TV에 출현한 자끄 나세르 포드 사장 (CEO) 은 볼보에 지불하기로 합의한 64억달러가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라는 월가 일부 분석가들의 비난에 대해 "인수경쟁을 벌이다 보면 웃돈을 얹어줄 수도 있는 일" 이라는 말로 가볍게 응수했다.

현금을 2백40억달러나 은행에 넣어두고 있는 포드로선 10억달러쯤 더 지불한들 대수일까. 자신감에 넘쳐있는 미국의 한 단면이다.

지난 4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5.6%, 3년 연속 연 4% 가까운 경이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물가상승률은 40년만의 최저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시아위기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심화시킨 면은 있지만 물가안정이란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존 윌리엄스 뱅커스 트러스트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 말할 정도다. 지난해 8월, 러시아 파산 소식에 주가가 폭락하고 금융시장이 심하게 동요하는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혼란도 잠깐, 10월이 되자 분위기는 다시 돌아섰다. 실업률과 금리는 수십년내 가장 낮은 수준이며 지난해 과세후 실질소득은 4%나 뛰었고 주가도 26% 올랐다.

뉴욕시가 1월말에 시행한 '물품판매세 (8.25%)가 없는 주 (週)' 에는 백화점마다 몰려든 고객으로 북새통을 치뤘다. 소비증가는 저축률을 마이너스권으로 내려보냈다. 연 20%가 넘는 주가상승을 고려해도 저축률은 6%에 불과하다.

"미국경제는 소비가, 소비는 주가상승이 지탱하고 있다. 결국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선 주가가 계속 올라야 한다. 이런 불안한 연결고리는 언젠가 끊어질 수 밖에 없다" 는 것이 비관론의 핵심이다.

스탠 쉬플리 메릴 린치 선임이코노미스트의 생각은 다르다. "소비가 큰 몫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의 설비투자도 그에 못지 않게 활발하다. 미국경제는 두 바퀴로 굴러가고 있다. " 실제로 지난해 여름만 해도 미미했던 기계설비투자가 4분기에는 다시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성장의 90% 이상을 소비에 의존하는 경제는 결코 건전해 보이지 않는다. 주가가 폭락하면 소비는 일시에 위축될 수 있다. 갤럽조사 결과, 미국투자가들은 주식투자에서 향후 10년간 연 16%의 수익을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수치는 분명히 실현불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주가결정의 근거가 되는 기업의 이익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있다. 이익이 줄면 고용 및 설비투자 감소는 예정된 코스다. 주가에 거품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막대한 무역적자도 골칫거리다. 이처럼 '잠재된' 위기를 언제까지 위기가 아닌 듯 잊고 지낼 수는 없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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