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밀레니엄포럼] 최장집교수 주제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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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새로운 밀레니엄이 눈앞에 다가왔다. 장기적 안목에서 지난 과거를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12개 주제를 정해 1년동안 토론회.좌담.기고.기획보도 등을 집중 보도하는 '중앙밀레니엄포럼' 을 마련해 한국의 바람직한 변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우선 국내 미래연구 전문기관인 한백재단이 마련한 '21세기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계기로 '국가' 의 문제를 성찰한다.

또 지역별로 국가단위를 넘어선 블록화 현상과 민족국가 형성을 위한 진통이 뒤섞여 있는 세계적 차원의 변화양상을 점검하는 기획도 마련해 우리의 국가발전 전략을 객관적으로 조망한다. 이어 지역별 국가발전 전략과 현황을 지역별로 살펴보는 전문가 기고와 기획기사도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국가중심 발전모델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 대안적 모델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일은 탈냉전.세계화라는 시대적 변화, IMF비상체제와 맞물려 새 천년의 주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국가중심 발전모델이 급속히 위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은 현 시점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중심 발전모델의 완전한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국가에서 시민사회로, 국가개입주의에서 시장경제로 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앞으로 시대는 적어도 상당기간 국가 - 시민사회 - 시장이 복합적으로 결합되고 균형을 이루는 균형발전모델이 요구된다.

최근까지 우리는 국가중심주의에 입각해 근대화를 이룩해왔고 민족주의와 발전주의가 이를 뒷받침해왔다.

그러나 이들이 낳은 냉전과 권위주의는 닫힌 민족주의를 강화해왔으며 사회의 다원성.자발성.유연성.창의성을 위축시켰다. 경제는 양적으로 성장했으나 사회적 가치는 낙후해 불균형을 이뤘으며, 국가는 강화됐으나 민주적 효율성을 갖지 못한 반면 시민사회는 저발전 상태에 머물렀다.

탈냉전.세계화에 효율적으로 적응하기 어려운 이같은 불균형 때문에 우리는 근대화에 대한 반성적 재조정을 필요로 한다.

앞으로 국가는 작고 효율적이면서도 민주적 국가가 돼야 하며 동시에 시민사회의 시민권이 크게 확대돼야 한다. 시민사회의 힘과 이니셔티브가 더 강해져야 과거 국가중심의 발전전략으로 회귀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영역에서도 시장원리가 더 많이 지배해야 한다. 민족주의의 폐쇄성도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단지 열린 민족주의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민족적 정체성은 당연히 유지해야겠지만 더 이상 과거같은 일국 중심주의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편적 세계주의를 선호하는 이유는 세계를 진취적으로 받아들이는 개방적.적극적 근대화가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젠 세계 보편원리를 거부함으로써 민족적 정체성을 갖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세계의 규범.가치를 우리 것으로 실천함으로써 정체성을 유지.강화해야 한다. 민주주의.인권.복지.시민사회.시장경제는 모두 세계적 규범.가치다.

최장집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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