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법조비리 사건이후 법조계 불신 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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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법조비리 사건의 진원지인 대전지검 모 검사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현직 판.검사들이 이종기 (李宗基) 변호사로부터 떡값.전별금 등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간 직후 사기사건 조사 도중 고소인으로부터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것이다.

40대의 고소인은 "내가 하도 억울해 고소하긴 했지만 당신이 깨끗한 사람인지 믿을 수 없다" 며 조사를 거부하고 검사실을 나가버렸다.

담당 검사는 "검사 생활 10년만에 이런 수모를 당하기는 처음" 이라며 "검사에 대한 신뢰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줄은 미처 몰랐다" 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일선 검사들도 비슷한 경험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2일 서울지검 7층 형사부 조사실에선 한 고소인이 "도대체 사람을 몇시간 기다리게 하는 거냐.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빨리 보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며 검사를 호통쳐 직원들이 말리느라 소동을 빚었다.

대전 법조비리 사건 이후 법원.검찰.변호사 업계 등 법조 3륜이 국민으로부터 극도의 불신을 당하면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18일 대전지법의 한 형사법정에서는 30대 여자가 자신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40대 남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변호사가 재판부에 로비해 풀려났다" 며 소란을 피워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다.

또 가처분 사건 전담 재판부인 서울지법 민사51부에는 최근 조계종 정화개혁회의측 관계자라고 신분을 밝힌 한 남자가 "재판부가 5억원을 받고 조계사 퇴거명령을 내렸다고 하는데 가만두지 않겠다" 는 협박전화를 몇차례 걸어왔다.

서울지법 李모 판사는 "판사들 모두가 법정에서 돌발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며 "중견 판사들의 집단 사직과 겹쳐 법원 분위기는 사상 최악" 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사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 최근 서울서초동 법조타운에서는 형사사건 의뢰인들이 "수임료를 돌려달라" 고 요구, 변호사와 마찰을 빚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수임료 분쟁과 관련한 진정이 지난해 66건이었으나 올해는 1월말 현재 벌써 15건이 넘었다" 며 "이같은 현상은 변호사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악화된 결과" 라고 설명했다.

의뢰인들은 특히 지난달부터 수임료의 10%가 부가세로 부과되자 "무슨 근거로 수임료를 더 내라고 하느냐" 고 반발, 변호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주머니를 털어 세금을 내는 경우까지 있다.

대한변협 김평우 (金平祐) 사무총장은 "법의 권위가 상실되면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 며 "법조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실추된 법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 라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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