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세상보기]'한방먹이기'는 언제 적절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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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말을 가려서 하거나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려다 보면 교언영색 (巧言令色) 이 되기 쉽다.

그렇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면 설령 올바른 얘기라도 상대방을 한방 먹이는 꼴이 된다.

제때에, 알맞게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이럴 때는 그저 공자 (孔子) 님의 지혜를 빌리는 수밖에 없다.

"더불어 말할만 한 데도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요 (失人) , 더불어 말할 수 없는 데도 말한다면 말을 잃는 것이니 (失言) ,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잃지 아니하고, 또한 말도 잃지 않는다. "

"공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어요?" "말할만 할 때는 말하고, 말하지 못할 때는 말하지 말란 말이다!" "그럼 언제가 말할 때고, 언제가 말하지 못할 때여요?" (어렵다 어려워. 대답보다 더 어려운 질문도 있구나. ) 며칠전 한 국회의원이 김영삼 (金泳三) 전 대통령에게 한방 날렸다.

92년 YS가 대선자금을 거두면서 10억원 미만을 가져 오는 사람과는 차를 마시고, 그 이상을 가져오는 사람과는 밥을 먹었다는 내용이다.

하 그것 참, 이 삭막한 세상에 아직도 이런 재미난 얘기가 남아 있다니.

(궁금해 죽겠네. 발설자는 이런 재미난 얘기를 혼자만 알지 말고 더불어 말 좀 합시다. 8백억원 갖고 온 사람과는 몇 끼를 나눴다고 합디까?)

얼마전엔 미국 스탠퍼드대 자문교수로 있는 컴퓨터 시스템 전문가 이종문 (李鍾文) 씨가 한국 대학교수들을 한방 먹였다.

항공기 납치범과는 교섭이 돼도 정년이 보장된 (철밥통의) 한국 교수와는 교섭이 안된다는 것이다.

연구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국내 대학의 경쟁력 저하와 그것을 타개해야 할 교수들의 충고 안듣기, 옹고집 부리기를 질타한 말이다.

옛말 그대로 나라가 올바른 때에도 화살처럼 곧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에도 화살처럼 곧은 말이라면 그 한방 먹이기는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항상 적절한 한방 먹이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할 상대와 말할 때를 잘 골랐는지 알쏭달쏭한 경우도 있다.

얼마전 국회 529호실 사건이 터졌을 때 안기부장은 격앙된 어조로 야당 총재를 한방 먹였다.

그는 야당총재가 앙심을 품고 안기부를 공격했지만 자신의 팔만 삐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안기부장으로서 적절한 비난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 야당총재가 팔을 치료하러 정형외과를 드나들었다는 소문은 없다.

핵폭탄의 위력과 같다는 검찰 고검장 (高檢長) 의 한방 먹이기도 알쏭달쏭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고검장은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권력의 시녀가 됐다고 비판하면서 검찰총장이 물러나야 자신도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수뇌부는 대전 변호사 비리사건에 연루된 일을 숨기려는 부도덕한 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도덕한 사람인가, 법조 개혁을 앞당길 사람인가.

지금까지 내려진 두 가지 해석만으로는 판단을 불허한다.

그 해석은 이렇다.

①고검장의 폭탄선언은 항명 (抗命) 이고 검찰에는 광범위한 개혁 저항세력이 있다.

②검찰은 원래 상명하복 (上命下服) 하는 조직이다. 얼른 생각해봐도 ①번 해석은 그럴 듯하다.

검사들끼리의 심야토론에서 검찰 중립화같은 발전적 논제 (論題) 보다 관행으로 받은 떡값 때문에 검사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이제는 그 많은 떡값으로 떡피자.떡파이를 만들어 먹을 때는 지났는 데도 말이다.

(아,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은 얼마나 괴로운가!) 그렇지만 ②번 해석은 금방 이해가 간다. 대한민국 남자는 누구나 다 군대에 다녀 왔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런 조직이라고 ②번은 말한다.

"검사 4기생은 5기생에게 명령한다, 밤송이를 주워 와랏! 5기생은 6기생에게 명령한다, 원산폭격을 중지하랏! 6기생은 7기생에게 명령한다, 알 철모를 벗어랏!"

김성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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