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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남자 vs 능력 없는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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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 같은 민심의 변화는 다른 곳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나카소네(中<66FD>根)·오부치(小淵)·후쿠다(福田) 등 역대 총리를 배출한 군마(群馬)와 와카야마(和歌山) 등 자민당의 텃밭들이 대거 민주당 우세로 돌아서고 있다.

우선 장기적인 경기침체 등 경제 문제를 그 이유로 꼽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과거 선거를 돌아보면 그 당시가 불황일수록, 또는 국민 생활이 어려울수록 선거의 결과는 여당에 유리했다. 아소 다로(麻生太<90CE>) 내각 지지율이 바닥이라고는 하지만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내각처럼 지지율이 10% 밑으로 떨어진 경우에도 정권을 야당에 넘겨주진 않았다. 당시 유권자는 물론 여당·야당 그 누구도 정권교체는 상상하지 않았다.

여권이 힘을 못 쓰는 지금의 정국이 나타난 요인은 뭘까. 우선 일본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지역 공동체가 강했던 지방에서는 국회의원과 이익단체의 유력 인사들이 지연과 혈연을 동원해 자민당의 표를 모았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주민 간의 유대가 약해지고 기초지자체 합병 등으로 지방 의원이 줄면서 더는 지방의 조직표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자민당 간부들의 실언과 실정이 끊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유권자들은 아소 총리의 뒤를 이을 자민당의 얼굴이 없다고 판단했다.

얼마 전 일본의 시사 칼럼니스트 가쓰야 마사히코(勝谷誠彦)는 이번 총선을 놓고 “믿을 수 없는 남자(자민당)와 능력 없는 남자(민주당)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꼴”이라고 했다. ‘믿을 수 없는 남자’는 전후 큰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켰기 때문에 공명당 같은 애인(자민·공명 연합)을 만들어도 용서했다. 하지만 가장인 아베·후쿠다가 잇따라 집을 뛰쳐나갔고(사임), 아소 총리는 잇따른 말실수와 우유부단한 정치력으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집안을 이끌어갈 인물도 없다. 반대로 ‘능력 없는 남자’는 지금까지 직업도 없이 집에 틀어박혀 지내다 아르바이트로 돈벌이라도 할라치면 ‘허위 e-메일 폭로사건’ ‘당 대표 비서의 불법 정치헌금 스캔들’이 터져 휘청거렸다. 매니페스토를 앞세워 정권교체를 하겠다며 호언장담하지만 행정부를 장악하고 정책을 추진한 경험은 전무하다.

일본인들은 경기부양에 세금을 쏟아붓고도 경기회복은 더디다는 점을 답답해하고 있다. 또 정부의 연금관리 부실로 인해 미래가 매우 불안하다고 느끼고 있다. 지금 이대로 살려면 ‘믿을 수 없는 남자’를, 모험이지만 그래도 바꿔보자면 ‘능력 없는 남자’를 선택해야 한다. 이제 선택의 날은 하루 남았다.

박소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