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검찰]정치권에 인사로비 스스로 '시녀'전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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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검찰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심재륜 대구고검장 항명 파동을 계기로 "국가 사정권력의 중추인 검찰이 어쩌다 이 지경에 빠지게 됐느냐" 는 자탄과 자성의 목소리가 넓게 퍼지고 있다.

벼랑에 선 검찰의 현주소를 2회에 걸쳐 조명한다.

이달 초 검찰 내에선 지방 고검장 2명이 차기 총장을 노리고 맹렬한 인사로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모 검사장은 주말마다 상경해 집권당 주변을 기웃거리고, 또다른 검사장은 언론계 인사들을 상대로 여론몰이를 한다는 내용.그래서 박상천 법무부장관으로부터 구두질책을 받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어느 조직이든 인사철이 되면 술렁이게 마련이다.

인사 대상자가 나름대로 구명운동을 벌이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검찰 내에선 고위 간부직은 정치인을 끼지 않으면 승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소문이 나돈다.

인사가 끝나고 나면 "어느 지검장은 누구 인맥이다" "누구는 누구 '빽' 이다" 는 말들이 횡행한다.

문제는 전국 검찰의 수장인 검찰총장조차 이같은 로비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김영삼 (金泳三) 정권 당시 A검찰총장은 검찰국장으로 갈 때는 군 실세가 도와줬고 총장이 될 때는 고교 선배인 정치권 실세가 밀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항명 파동의 주인공인 沈고검장은 유인물을 통해 金총장에 대해 "YS와 김현철 (金賢哲) 씨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권력에 맹종하고 있다" 며 독설을 퍼부었다.

이같은 소문이나 주장은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사정권력의 핵심인 검찰총장을 상대로 이같은 말이 나돈다는 것 자체가 검찰로서는 치욕적인 일이다.

만의 하나라도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임명된 검찰총장들에게 정치적 중립성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 (緣木求魚) 다.

10여년간 검사생활을 하다 옷을 벗은 B변호사는 "아이로니컬하게도 YS의 문민정부가 시작된 뒤부터 검찰 인사에 대한 정치권의 외풍이 더욱 심해졌다" 고 진단한다.

"과거 군사정권 때는 고위 장성들이 검찰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민정부 실세들은 오랫동안 야당 생활을 하면서 신세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고 정권을 잡은 뒤에는 부탁과 청탁이 봇물을 이룰 수밖에 없었던 거죠. "

B변호사는 모 법무부장관이 "내 책상엔 정치인들이 검사들 인사청탁으로 보낸 민원서류가 수백통이나 된다" 고 부하들 앞에서 탄식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어찌보면 민주화의 한 부작용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이 과거 YS 정권에서만 이뤄졌고 현 정권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C검사는 "과거엔 검찰 인사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1과장이 막강했고 출세 자리였지만 요즘은 전혀 아니다라는 농담이 검사들 사이에 나돈다" 며 "자기 상관으로부터 인정받는 게 아니라 정치권에 먼저 줄을 대려는 풍조가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임기가 2년으로 정해져 있는 검찰총장이 1년 사이 세번이나 바뀐 일도 있었다.

이쯤되면 검찰의 중립성은 이미 갈 데까지 간 셈이다.

검사장 출신 D변호사는 검찰 수뇌부에도 잘못이 크다고 지적한다.

"검찰 수뇌부가 언론에 자꾸 나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 정치적 사안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것도 부하 검사들로부터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오해를 사게 하게 마련입니다. "

이같은 관점에서 현 수뇌부가 야당 총재 개인에 대해 언급하고, 국회에 대해 감정적 발언을 한 것 등은 삼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검사들 사이에선 이번 기회에 검찰 인사에 정치적 외풍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종을 이룬다.

이를 위해선 검찰권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권력의 변함없는 욕망을 차단할 구조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직 E검사장은 "검찰총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현재 구도에선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며 "인사청문회 도입 등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또 검사동일체 원칙.상명하복.서열화 등 검찰이 금과옥조 (金科玉條) 로 여기고 있는 부분들도 이번 기회에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경청할 만하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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