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넘나들기]데이비드 프롬킨 '인간의 이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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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데이비드 프롬킨 '인간의 이치' (원제 : The way of the world.알프레드 K 노프 출간)

데이비드 프롬킨의 '인간의 이치' 는 인류 탄생 이래 수만년의 역사를 개관한다. '인간의 역사란 과연 일관된 원리를 가진 것인가' 란 문제는 밀레니엄 교체의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주제다.

인류의 역사 전체를 불과 2백여쪽의 지면에 담았다면 (그중엔 도판도 적지 않다) 물론 정밀한 서술은 될 수 없다.

하나의 스케치다. 윤곽을 이루는 것은 8개의 대사건이다.

▶인류의 출현 : 약 3백50만년 전 아프리카의 밀림지역에 살던 유인원 중에 두 발로 걷는 변종이 나타나 두뇌가 커지는 진화를 겪기 시작했다.

▶문명의 형성 : 약 1만년 전 인류는 농업과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급격한 인구증가를 시작했다.

▶양심의 탄생 : 약 2천5백년 전 유라시아대륙의 여러 곳에서 보편성을 추구하는 종교가 발달했다.

▶평화의 제도화 : 약 2천년 전 항구적 평화를 추구하는 정치사상이 각지에서 거대한 제국의 형성을 뒷받침했다.

▶이성 (理性) 의 발견 : 천여년 전 합리적 인식론과 경험적 학술방법이 기독교권.이슬람권.유교권에서 각각 발달했다.

▶지구의 통합 : 약 5백년 전부터 유럽인의 세계항해로 전세계의 인류가 직접적 관계를 갖기 시작했다.

▶자연의 공략 : 약 3백년 전 시작된 산업혁명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두번째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민주정치의 도입 : 2백여년 전부터 인간의 평등을 향한 정치제도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프롬킨의 관점은 서양중심의 진보사관이다. 그러나 이 관점의 제약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작은 화폭에 거대한 주제를 담는 데 더 포괄적인 관점을 기대한다는 것도 어차피 무리한 일이며,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그의 관점으로부터 도전적 자극을 받는 것만도 유쾌한 일이다.

예컨대 저자는 노예제도.제국주의.빈부격차의 심화, 환경파괴 등 일반적으로 죄악시되는 현상들을 당해 시대의 자연스러운 역사현상으로 긍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일관된 기준으로 서술하기 위해 그로서는 부득이한 선택이다. 이런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오늘의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기 쉬운 경향울 한 차례 반성하는 거울로 삼을 수 있다.

역사학뿐 아니라 철학.인류학에서 현대 자연과학에 이르는 저자의 폭넓은 이해력이 다양한 장면들을 매끄럽게 연결시키며 펼쳐 보여준다. 이 장면들은 현재를 지나 미래까지 연결된다.

당면한 인류의 과제가 전지구적 국제법체계의 수립과 문화적 자결주의 사이의 갈등에 있다는 그의 진단은 국제정치학자답다.

그러나 다른 행성에 식민지가 건설되리라는 전망은 과학계의 주류에서는 벗어난 것인데, 그의 진보주의가 얼마나 철저한 것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 김기협

50년 서울생으로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서교섭사 연구에 진력하고 있다. 역서로 '용비어천가' '가이아' '중국도량형도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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