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때문에 한국 경제회복 장담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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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내 우려]

국내외 재계 및 학계 인사들은 고조되는 최근의 정치불안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특히 정치불안이 노동문제와 맞물릴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지적했다.

◇ 서강대 남성일 (南盛日) 교수 = 정치적 불확실성이 외자유치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외자유치 노력을 많이 했지만 실제 실적은 아직 크게 미진한 상황이다.

현 정치권 행태를 보면 집권 경험이 있는 야당이 과거 야당의 구태 (舊態) 를 벗어나지 못한 게 문제라고 본다.

장외 (場外) 정치가 경제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 생각해주기 바란다.

또 여당도 경제문제를 한건주의식 정치논리로 풀려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것이어서 부작용이 우려된다.

빅딜만 하더라도 시장논리와 합리성보다 정치논리.여론몰이식 논리로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여 바람직하지 않다.

◇ 방정임 ERA 코리아 해외기업 매물팀장 = 정치환경이 악화되면서 국내 부동산에 관심을 갖던 외국투자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10여건 정도 됐던 상담건수가 근래 2~3건으로 줄었다.

지난해 추세라면 올해 부동산을 사거나 개발사업에 동참하려는 투자자들이 많을 것으로 전망됐고 실제 일부는 매입의사까지 밝혔으나 최근 정치상황이 불안해지자 좀더 두고 보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 보스턴 컨설팅 한국지사 데이비드 영 지사장 = 대부분의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투자환경을 장기적으론 밝게 보지만 최근 빅딜관련 노사분규와 정치불안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 스코틀랜드 투자개발청 윤길수소장 = 장기적으로 영국 투자가들은 한국의 투자환경을 낙관적으로 보지만 정치적으로 여야 정당간 힘의 균형이 맞지 않아 단기적으로는 다소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 전경련 이용환 (李龍煥) 상무 = 얼마전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사 관계자들이 내한했을 때도 한국경제 향후 전망과 관련, 정치안정 문제를 언급하는 등 외국에선 한국의 정치상황을 경제의 중요 변수로 보고 있다.

실제 외국 업체들이 국내투자를 위해 상담할 때 주요 질문중 하나가 향후 정치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한 것이다.

그런 만큼 최근의 정치권 불안은 한국 경제의 신인도를 다시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당장 여야 대립으로 입법활동이 제대로 안돼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에 필요한 조세감면책 등의 지원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구조조정에 상당한 지장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 모경제연구소 관계자 = 지난 97년 외환위기의 사실은 정치불안 때문에 터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의 정치상황도 당시와 비슷하다.

우선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에 내각제를 둘러싼 미묘한 갈등이 변수로 등장, 기업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여기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실업.노동 문제가 재야의 소요사태와 맞물리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벌써부터 내년 봄 예정인 총선을 의식,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과 일들이 터져나오는 것도 기업의 투자의욕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혼란은 경기회복 속도를 둔화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제2의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뇌관과 같다.

이런 사태가 지속되면 대외신인도도 순식간에 떨어질 수 있다.

정치권 대립은 또 공공부문 개혁에도 차질을 빚게 할 것이다.

차진용.표재용 기자

[해외시각]

"한국이 실업률 증가 등으로 경제적 고통이 아직 만연돼 있는데도 한국 내부에선 이미 바닥을 치고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을 주도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

미 뉴욕 타임스지는 24일자 국제면 한면 전체를 할애한 서울발 특집기사에서 한국경제가 호전돼가고 있다는 긍정적 측면을 소개한 뒤 그러나 아직 낙관하기엔 이르다고 경고했다.

이 신문은 향후 한국의 진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변수로 실업자 문제와 정치적 불확실성을 꼽았다.

특히 실업률의 경우 이미 7%를 넘어선 데다 한국 정부는 올해 실업자가 2백여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경제전문가들은 이 예상치가 과소 평가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한국의 불확실한 정치상황으로는 북한문제와 여야 간의 대치,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내각제 합의 이행여부 등을 지적했다.

이런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은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신용도를 정크본드 수준에서 투자가능 등급으로 상향 조정하기 시작하고, 한국 정부가 지난 몇 주간 국제통화기금 (IMF) 자금 28억달러를 상환한 사실 등에 따른 것이라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어 환율.주가.투자자 신뢰지수 등 호전되고 있는 각종 경제지표들을 나열한 뒤 존 도즈워스 IMF 한국사무소장의 말을 인용, "한국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빨리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도즈워스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를 구조조정하고 장기적으로 성장 기반을 갖추도록 하는 데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해가 걸릴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IMF의 금융지원 조건을 단순히 이행하는 게 아니라 시장을 처음부터 다시 육성하는 것" 이라고 신문은 강조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 (25일자) 도 '진짜 이 정도로 경제회복이 됐나' 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노동계의 동요, 낮은 소비자 신뢰지수, (구조조정 등 개혁에 대한) 재벌의 망설임 등이 경제회복을 더디게 만들 수 있는 3대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그러나 "한국경제가 회복되고는 있지만 대량 실업에 직면한 한국 국민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고 보도해 한국 내의 성급한 낙관론을 경계했다.

로이터 통신도 최근 "한국경제가 유례없는 회복속도를 보이고 있으나, 이에 대해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고 보도하면서 앞으로 반도체 가격동향과 전반적인 세계경제 흐름이 회복의 완급에 주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봤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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