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발해도 당나라 지방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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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헤이룽장성의 옛 발해 도읍지에 있는 발해국 유적 안내 현판. 중국 측은 이 현판에서 발해가 옛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현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공성진 의원이 공개했다.

"발해국은 우리나라 당나라 시기의 지방 민족정권이다(渤海國 是我國 唐朝時期的 地方民族政權.발해국 시아국 당조시기적 지방민족정권)."

중국이 고구려뿐 아니라 '발해'까지 자기네 변방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구체적 사례가 확인됐다. 위의 내용은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시 보하이전(渤海鎭.발해진) 지역에 있는 발해국 안내 현판의 시작 글이다. 현판은 발해의 도읍이었던 동경(東京)의 왕궁터 앞에 세워져 있다.

현판은 이어 "당의 하나의 지방정권으로서, 발해의 왕위를 계승하는 자는 반드시 당의 책봉 절차를 거쳐야 합법적으로 왕위가 인정됐다"고 적었다.

한나라당의 공성진 의원은 지난 4일 현지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현판의 내용을 담은 사진을 11일 공개했다. 공 의원은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와 함께 중국 동북 3성을 방문한 뒤 최근 귀국했다.

사진을 찍는 과정에선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관리인들은 최근 한.중 간의 역사 갈등을 의식한 듯 안내 현판과 동경성 내부를 촬영하던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소속 대학생의 디지털 카메라를 빼앗아 사진 파일을 지울 것을 요구했다. 기념사업회의 이원철 팀장은 "우리 측은 결국 사진 파일을 지운 척하고, 2000위안(약 30만원)을 벌금조로 낸 뒤 카메라를 돌려받았다"고 했다.

공 의원은 "중국이 오래전부터 국가 전략사업으로 역사 공정(工程)을 추진하면서 한국의 고대 국가들을 자기 역사로 편입시키려 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역사물 안내 현판에 발해 역사를 이처럼 노골적으로 왜곡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현지에서 발해사는 한국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중국사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측은 북한과 함께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데 성공한 뒤 발해 유적도 등재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 의원은 "고구려사를 왜곡한 중국의 사회과학원 산하 동북공정 판공실이 올해부터는 동아시아에서 당나라와 한때 쌍벽을 이루던 발해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고구려에 이어 그 후예 국가인 발해의 중국사 편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7일부터 11일까지 중국의 고구려사 역사 왜곡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은 "중국 공안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의원들이 가는 곳마다 서너명의 사람이 우리를 예의주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안시 국립박물관의 표지석에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이자 지방정권'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했다. '고구려 역사 중요기술'이라는 제목의 표지석엔 "(당나라)낙랑 무제 때 설치된 고구려는 하나의 현으로 속해 있었다. 요동의 동쪽 천리에 있는데, 남쪽으로는 조선 예맥, 동쪽으로는 옥저, 북쪽으로는 부여와 접근해 있다"고 기술해 놨다. 고구려가 남쪽의 조선과는 별도의 국가임을 명시한 대목이다.

◇발해=고구려 사람 대조영(大祖榮)이 세운 나라. 서기 699년에서 926년까지 존속했다. 신라에 망한 고구려 유민들이 만주 쑹화강 이남과 고구려의 옛 영토를 거의 확보해 국세를 떨쳤으나 신라 말에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에 망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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