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길 교수 첫 기행문 '회상의 열차를 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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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평생 "배수진을 치고 살았다" 는 한국 사학계의 거목 강만길 (66.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국내 진보적 지식인의 대표격으로 평생 한국사 연구에 몰두해온 그가 다음달 정년퇴임을 앞두고 대외활동이나 연구 등 모든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은둔이나 절필이 아니라 한시적인 '휴지기' 라고 한다. 다만 지금까지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은 끝까지 거둘 생각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 칸의 종지부를 찍는 책 한 권을 내놓았다.

97년 가을 블라디보스톡에서 타슈켄트까지 8천㎞의 거리를 9일동안 열차를 타고 둘러본 역사기행 '회상의 열차를 타고' (한길사.1만원)가 그것이다.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당한 그 통한의 길을 통해 현대사 다시 쓰기를 시도하는 것. 그가 여행한 길은 1937년 스탈린정권이 친일성향을 이유로 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몰아낸 통로가 된 비애의 철로다.

당시 강제이주 당한 인원이 18만에 달하고 반혁명과 친일 등의 이유로 숙청된 고려지식인도 2천5백명에 이른다. 책을 내면서 그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세상에 나서 이런 글은 처음 써봅니다. 연구논문만 쓰다 여행기라고 내놓으니 영 불안하네요. 공부하는 사람이 이런 글을 써도 되는지 망설였지요. 하지만 고려인사회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두 가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여행에 올랐다. 우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인명과 고려인 부대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계획한 것 중 고려인 부대가 당시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한국현대사를 바꿔놓을 의미있는 성과였다.

고려인부대는 일제말기까지 시베리아의 소련군대 내에서 활동했던 무장부대로 연합국이 상해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은 원인이 됐던 존재다.

만약 고려인부대가 없었더라면 연합국이 임시정부를 인정했을 것이고 이는 우리의 독립 문제와 직접 연결된다. 국내 학계에서는 연합국이 실제 존재하지 않았던 고려인부대를 내세워 임시정부의 승인을 거부하기 위한 구실로 삼은 것이 아닌가하는 것은 지금까지 논쟁의 대상이었다.

강교수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난 소련 군인출신 박 표드르씨와의 대화에서 이 사실을 확인한다. 반면 독립운동가들의 인명작업을 확인하는 작업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투쟁의 역사를 알만한 이들은 숙청당해 다 사라졌고 모국어를 잃어버린 촌부들에게서 이들의 자취를 듣기란 불가능했던 것. 강교수는 남아있는 사람외에는 민족의 역사조차 훑어볼 수 없는 그 곳에서 비애의 민족사를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술회한다.

강교수는 여행 중 만난 고려인들의 면면도 인상깊게 적고 있다. 러시아 소설가로 민족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김 아나톨리, 러시아 시험비행사이자 공군대령으로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게오이 훈장을 받아 영웅칭호까지 받은 최 올레그, 한국인 2세로 스베르들로프스키 오페라단에서 활동하는 솔리스트 리나 김 등. 강제이주의 설움아래 갈대밭에서 벼농사를 해내며 끈질기게 살아온 고려인의 후예들이다.

"여행을 통해 해외동포와 모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만 우리 역사가 아니라 동포들의 역사도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죠. 또 분단으로 인한 해외교포와의 관계, 통일 과정에서 교포정책도 빨리 정립돼야 할 것입니다."

이런 비전을 제시하는 강교수는 그가 지난 온 길이 더 이상 '비애의 길' 이 아닌 '희망의 길' 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 =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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