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총리중심 국정운영 실현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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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이 일상적인 국정은 총리가 총괄토록 하겠다고 국정운영 원칙을 천명했다.

대신 대통령은 장기과제나 주요 혁신과제를 챙기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이 실천될 경우 우리 정부가 국정을 꾸려나가는 시스템에는 큰 변화가 올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국무총리에게 실권을 주겠다"고 수차례 공약한 바 있다. 이를 감안할 때 비록 청와대대변인은 "책임총리 개념은 아니다"고 못박았지만 방향은 바람직하다 하겠다. 또한 이는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는 헌법과도 부합한다.

다만 이 같은 권한위임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진짜 권력은 계속 대통령이 틀어쥐고 여론의 비판만 총리가 떠맡도록 하겠다는 눈속임은 안 된다. 국민은 그동안 대독 총리.허수아비 총리.방탄 총리를 숱하게 봐왔다. 진짜와 가짜를 금방 구분할 능력과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냥 해본 말이라면 괜히 공무원만 이중으로 보고서 만드는 고생을 시키는 꼴이 된다.

시도가 성공하려면 몇가지 조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노 대통령도 지적했다시피 대통령과 총리가 구체적으로 업무를 분담해야 한다. 이를 명확히 나누지 않으면 그 결과는 뻔하다. 어떤 공무원도 대통령을 빼고 총리에게 보고하고 지시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총리가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위임되는 권한만큼 총리실을 확대.강화해야 한다. 여기에 맞춰 청와대비서실도 업무를 조정, 개편해야 한다. 총리에게 국정을 맡기면 가장 반발할 그룹이 대통령 측근들과 청와대 비서진이라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의 '총리 중심 국정운영' 방침이 제대로 집행되면 이는 중요한 국정개혁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장관들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장관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는 공무원의 생각도 바뀐다. 공무원이 변하는 것을 보면 그때 비로소 국민도 믿는다. 결국 핵심 열쇠는 대통령의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