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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그룹 빅딜 … 은행 매각 … 메가톤급 정책 쏟아지는'이곳'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이명박 대통령이 집무실 책상 위에 앉으면 A4 크기의 보고서 몇 장이 놓여 있다. 정보 기관들이 만든 주요 동향 보고와 대변인실에서 만든 언론 보도 분석, 그리고 신문 스크랩이다. 국정원 보고서에는 대통령이 주목해야 할 국내외 기밀 정보와 각계 동향이 정리돼 있다. 기사 스크랩의 경우 이 대통령의 관심을 잘 끌지 못한다. 대통령이 출근 전 한 시간 이상 주요 일간지들을 살펴보고 나오기 때문이다.오전 5시쯤 일어나는 이 대통령은 출근 전 두 시간여를 관저에서 보낸다. 아침 식사와 러닝머신에서 뛰는 시간 외엔 주로 신문을 읽으면서 보낸다. 오후 7시∼7시30분 쯤엔 관저로 돌아가 김윤옥 여사와 함께 식사를 하고, 방송의 8시, 9시 뉴스를 챙겨본다. 뉴스를 시청하다 궁금증이 생기면 휴대전화로 해당 장관이나 수석을 찾는 경우가 꽤 있다.

청와대엔 대통령의 집무실·접견실이 있는 본관 건물을 중심으로 몇 개의 건물이 더 있다. 대통령과 가족이 거처하는 관저, 청와대 보좌진이 근무하는 비서동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 ‘여민(與民)’관으로 불린 3개의 비서동은 이명박 정부 들어 백성을 위한다는 뜻의 ‘위민(爲民)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1관에는 대통령이 업무를 볼 수 있는 소집무실과 대통령실장실·인사비서관실이 있다. 위민 2관ㆍ3관에는 각 수석비서관실과 대변인실이 분포해 있다. 위민 2관 옆에 경호처가 있는데 홍보기획관실은 이곳에 세들어 있다. 관저에서 본관으로 출퇴근할 때 차량을 이용했던 이 대통령은 최근 자전거로 이동한다. 대통령의 업무가 모두 청와대 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삼청동 안가(安家)’로 불리는 청와대의 삼청동 별관은 비밀스러운 업무 공간이다. 당선인 시절부터 이곳을 찾기 시작한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 정치권 인사들이나 외부 인사를 만날 때 이용했다.

안가를 찾는 이유는 보안성 때문이다. 청와대를 드나들 경우 출입 기록이 남을 뿐 아니라 ‘누구 누구가 청와대에 다녀갔다’는 소문이 나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하는 말은 기록비서관이 기록하게 돼 있다. 대통령이 종종 안가를 이용하는 건 기록비서관을 신경 쓰지 않고 사람을 맘 편하게 만나고 싶어서다. 과거에는 궁정동ㆍ효자동 일대에 여러 채의 안가가 있었지만 김영삼 대통령 때 대부분 없앴고, 현재 삼청동 안가만 남아 있다.

비서동 이름, 여민관,위민관으로
청와대의 일과는 각종 행사와 외부 인사 접견, 그리고 회의의 연속이다. 대부분의 직원이 아침 7시 무렵이면 출근하고, 수석실별 비서관회의(7시30분)→수석 비서관회의(8시)가 매일 오전 열린다. 수석 비서관 회의는 토요일을 제외하고 주 6회 열린다. 내부 회의로는 매주 월요일 열리는 일명 ‘대수비’가 핵심이다. ‘대수비’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의 약칭이다. 이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확대비서관 회의와 수석비서관 회의가 3∼4차례 열려 ‘대수비’의 의제를 검토한다.

수석비서관 회의는 국정 전반을 논의한다. 여기에선 비교적 자유로운 토론이 이뤄진다. 인사추천위원회는 막강한 힘을 가진 회의다. 고위 공무원이나 주요 공기업의 사장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실장이 주재하는 이 회의엔 민정수석과 인사비서관이 고정 멤버로 참석한다. 사안에 따라 정무ㆍ외교안보수석 등 수석비서관이 회의장에 들어간다. 정권 초 자주 열렸던 인사추천위는 공기업 인사가 마무리되면서 최근 빈도가 뜸해졌다.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회의 중 규모가 큰 것은 국가경쟁력강화위·녹색성장위 같은 대통령 직속위원회가 업무 보고를 할 때다. 청와대 회의 중 가장 격(格)이 높은 회의는 매주 화요일 열리는 국무회의다. 하지만 국무회의는 정부의 최고 정책심의기관이라는 법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토론을 벌이기보다 법률안과 예산안을 형식적으로 통과시키는, 일종의 요식 절차로 인식돼 왔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심야 국무회의를 열거나 국무회의 발언 내용 전부를 속기록 형태로 기록하기로 한 것이 그 예다.

직원 500여명 … 대선 캠프 출신 많아
청와대는 50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는 공간이다.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일반직 공무원도 있지만 당이나 대선 캠프 때 몸 담았던 공로를 인정 받아 별정직 공무원으로 특채된 사람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일부 한나라당 실세 의원은 자신의 보좌관 출신을 여러 명 청와대에 보냈다. 정권이 바뀌면 청와대 비서실엔 큰 변화가 일어난다. 경호직이나 일부 기능직을 제외하곤 대다수가 물갈이 되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축은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중심으로 한 각 수석비서관들이다. 각종 정책과 현황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청와대와 각 부처의 조정 역할을 담당한다. 밖으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보좌진은 제1부속실장과 의전비서관이다. 제1부속실장은 대통령의 개인 일정을 관리하며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역할 때문에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통한다. 문민정부(장학로), 참여정부(양길승ㆍ여택수)등 각 정권에서 유난히 제1부속실장과 관련된 추문이 많았던 것도 그런 위치 때문이다.

현 김희중 제1부속실장은 1997년 이명박 의원의 6급 보좌관으로 시작해 대통령 곁을 떠나지 않은 측근 인사다. 청와대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총무비서관직도 대통령의 측근 인사가 맡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되다시피했다. 문민정부 시절 홍인길 총무수석이나 참여정부 때의 최도술ㆍ정상문 비서관은 모두 재직 때 돈을 받은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현 김백준 총무비서관은 이 대통령의 고려대 상대 2년 선배로, 30년 넘게 이 대통령과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다.

의전비서관은 각종 접견과 행사 때 배석해 대통령의 의전을 총괄한다. “회의 때 대통령과 가까운 자리에 배치해 달라는 민원이 쏟아질 때가 가장 힘들었다”(전직 의전비서관 A씨)는 고백처럼 대통령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비서로 꼽힌다. 현 김창범 의전비서관처럼 주로 직업외교관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자리 순서 정하는 의전 비서관도 실세
겹겹의 경호와 보안 속에 가려진 있는 청와대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국민과 소통하는 곳이 있다. 400여 명의 청와대 출입 기자가 일하는 춘추관이 그곳이다. 하지만 청와대 출입 기자라고 해서 청와대 집무실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건 아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 하루 두 차례에 걸쳐 한 시간씩 취재를 허용됐던 청와대 비서동은 참여정부 시절부터는 기자의 출입이 금지됐다. 참여정부는 “브리핑을 잘 할 테니 비서동 출입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현 정부도 이걸 따르고 있다. 대통령 행사는 ‘풀(Pool) 기자’가 커버한 다음 다른 기자들에게 알려준다. 대통령의 일정 중엔 ‘풀 기자’의 접근도 안 되는 비공개 일정이 많다. 이런 구조에서 취재하기 때문에 기자들은 청와대 관계자들과 따로 식사 약속을 잡거나 전화로 궁금한 걸 물어 본다.

위쪽은 청와대 출입기자실 춘추관의 모습. 아래는 청와대 방문객 안내실 39연풍문39이다. 연풍문에는 카페와 은행 등 편의시설이 있다. [중앙포토]

청와대에도 커피숍이 있다. ‘연풍문’이라 불리는 방문객 안내실이다. 비서동 건물에 근무하는 청와대 직원들 역시 모두 이곳을 거쳐 출근한다. 연풍문에서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와 은행도 있다. 일반 관광객에게도 개방돼 청와대 내부를 일부나마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심야 국무회의를 마치고 국무위원들과 호프 미팅을 한 곳도 이곳이다.

지하 벙커엔 위기관리센터 가동
내부 직원들도 잘 모르는 ‘은밀한 장소’가 청와대 내부에 두 곳 있다. 지하 벙커와 서별관이다. 청와대 내 비서동 지하에 있는 지하 벙커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위기관리센터로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다. 국정원ㆍ군ㆍ경찰 등과 수시로 교신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안보ㆍ재난 관련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올 들어선 세계 금융위기에 대응한다며 이곳에 ‘워룸(War Roomㆍ전시작전상황실)’성격의 비상경제상황실을 설치했다. 하지만 경제상황실을 지하 벙커에 설치해 오히려 시장 불안을 더 조장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서별관으로 불리는 청와대 영빈관 옆에 자리한 작은 회의실도 은밀한 공간이다. DJ 정부 이후 정책 책임자들이 이곳에 모여 5대 그룹 빅딜, 대형 은행 매각 등을 극비리에 논의 하면서 ‘서별관 회의’란 이름이 붙여졌다. 지난해 가을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흔들릴 때 이명박 대통령은 수시로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은 총재 등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지난해 금융위기 국면에서 나온 1000억 달러 은행 외채 지급 보증 같은 메가톤급 정책도 이곳에서 결정됐다.

서별관이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는 주요 장소가 된 것은 지리적 위치 때문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다. 청와대 직원들이 근무하는 비서동에서 떨어져 있어 핵심 관계자 이외에 회의가 열리는지 알기 힘들고, 방 규모가 소규모 대책 회의에 적당하다는 것이다.

윤창희·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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