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차 수출 사기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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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어이없는 사기극에 자동차 2만2천대분의 수출대금 1억8천만달러 (약 1천5백억원)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구속된 브라질 교포사업가 전종진 (全鍾鎭) 씨는 유령회사들 사이의 채무관계를 서로 물고 물리게 하는 수법을 썼다.

지난 93년부터 아시아자동차 브라질 현지법인 AMB사를 개설, 자동차 판매에 뛰어든 全씨는 본사로부터 어느 정도 신용을 얻게 되자 수출대금 결제방식을 현찰결제인 신용장 거래에서 외상거래인 무역어음 (DA) 결제로 바꿨다.

당시 아시아측은 내수 격감으로 고전하던 터여서 全씨의 대금지급 약속각서만으로 이같은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全씨는 AMB사와 아시아자동차 본사간에 직접 거래가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파나마국적 유령회사인 밤바리인터내셔널 (BBI) 을 통한 중개무역으로 서류를 꾸몄다.

관세 절감을 위한 편법으로 본사가 양해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시아자동차는 이 때문에 자동차대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全씨는 또 "브라질에 자동차 합작공장을 설립하면 특혜융자와 관세.부가세 감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고 아시아 이사 李모 (53.미국도피) 씨를 설득했고 아시아측은 全씨 제안의 타당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5억달러 규모의 합작공장 설립신청서를 브라질 정부에 제출케 했다.

치밀한 사전 준비작업을 거친 全씨의 속셈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96년께부터. 그는 95년 3천5백만달러의 순이익을 낸 AMB의 경영수지를 합작계약서 서명 직후 일부러 적자인 것처럼 꾸며놓고 자금난을 핑계로 수출대금 결제를 미뤘다.

연체대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순식간에 1억8천만달러가 됐다. 아시아측은 全씨에게 결제를 종용했으나 서류상 채무자는 全씨가 아닌 유령회사 BBI였다.

더구나 全씨는 BBI에 지고 있던 서류상 빚을 또다른 유령회사인 아메리칸 사모아 (AS)에 9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넘긴 뒤였다.

또 AS는 넘겨받은 채권을 AMB의 증자에 필요한 자본금으로 납입, AMB - BBI - AS 3사간의 채권.채무는 물고 물리는 관계가 되어 소멸돼 버렸다. 결국 수출계약서상 아시아에 수입대금을 갚아야 할 BBI는 무자산 상태로 전락하고 결과적으로 아시아의 채권은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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