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변화 막지 말고 스스로 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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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기업형 수퍼마켓(SSM)을 둘러싼 갈등이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7일 한 지역 주유소협회가 사업조정신청을 냈는가 하면, 그 전주 안경업과 이·미용업 등 11개 분야의 진입장벽 완화를 주제로 열린 공청회는 이해가 걸린 단체들의 반발로 잇따라 무산됐다. 갈등의 초점은 대기업이 들어오면 중소상인들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가 빠져 있다. 하나는 소비자 문제, 둘째는 중소상인 본인의 문제다.

누구든 새 업종, 새 지역 진출에 앞서 시장조사를 한다. SSM도 마찬가지다. 가격이든 품질이든 구색이든 서비스든 기존의 지역 중소상인들이 채워 주지 못한 수요를 맞춰 준다면 상당한 초기 비용과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를 고려해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나선 것이다. 그 수요란 거꾸로 보면 소비자들의 불편과 불만이 쌓인 결과란 점을 외면해선 안 된다.

진입장벽을 없애거나 낮추자고 할 때 제일 먼저 거론되는 게 소비자의 이익 증진이다. 하지만 일단 논의가 시작되면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고 이해관계가 걸린 공급자들의 목소리만 부각된다. 여기에 이해 관련 부처, 정치권까지 가세해 배가 결국 산으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수가 너무 많아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바보는 아니다.

SSM만 해도 그렇다. 앞으로 허가제를 하든, 허가에 가까운 등록제를 하든 SSM을 막아 낼 진입장벽을 높이 쌓을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한 소비자들의 마음까지 장벽 안에 붙잡아 매둘 수 있을까.

서비스업의 도약을 위해서도, 소비자의 후생 증진을 위해서도 규제 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작으면 작은 대로 경쟁력을 갖춰야만 한다. 일본의 소기업·창업 컨설턴트 카야노 카츠미(栢野克己)는 『약자의 전략』(오대영 역, FKI미디어)에서 소기업의 생존 전략으로 상품·지역·고객층 세 가지를 특화하라고 충고한다. 상품은 다양할수록 좋고, 지역은 넓게 잡고, 고객층도 가리지 않는 것은 대형 업체나 강자의 전략이란 얘기다. 약자의 전략은 ‘넘버 원(No.1) 전략’ ‘온리 원(Only one) 전략’이며 버리는 용기와 결단은 필수조건이란 것이다. 결국 핵심은 변화를 막는 게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얼마 전 물러난 서동원 전 공정거래위 부위원장은 퇴임 전 기자간담회에서 “정상적인 사자라면 풀을 뜯어먹지는 않을 것이고, 진입 규제를 완화해 중소기업이 망한다면 그건 중소기업이 해야 할 사업이 아니다”며 “중요한 것은 진입장벽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에서 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박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새겨들을 무게가 있는 충고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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