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직원 '국회 상주'놓고 여야 공방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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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랜만에 순탄하다 싶던 국회에 기어코 사단이 벌어졌다.

30일 오후 한나라당 의총에서 '안기부 주재관 국회 상주' 의혹이 제기된 게 발단. 이날 의총은 당초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교원노조 설립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박관용 (朴寬用) 부총재의 검찰 소환 등에 대한 편파 사정 (司正) 을 성토할 자리였다.

가뜩이나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이신범 (李信範) 의원이 "철수했던 안기부 주재관이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다시 국회에 상주하면서 야당 의원들에 대한 도청.사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다" 고 발언, 불을 붙였다.

李의원은 안기부 주재관의 상주 사무실로 국회 본청 정보위원회 옆에 있는 529호를 지목했다.

의총장은 순간 여권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찼다.

흥분한 의원 40여명은 "직접 현장을 확인하고, 박실 (朴實) 국회 사무총장으로부터 경위를 파악하자" 며 의총장을 박차고 나와 정보위로 올라갔다.

의총은 정회됐고, 예정됐던 본회의와 법사위도 계속 미뤄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복도 농성은 이후 1시간30여분 동안 이어졌고, 朴사무총장으로부터 긴급연락을 받은 김인영 (金仁泳) 정보위원장과 정보위원들이 모두 입회하고서야 529호의 문이 열렸다.

방안엔 안기부 직통전화 2대, 국회 구내 전화 1대, 비화기 (전화도청 방지장치) 2대, 팩스 2대, 팩스 도청 방치장치 1대, 복사기 1대, TV 2대, 문서함 1개, 테이블 1개, 원탁책상 1개, 문서파쇄기 1대 등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없었다.

이를 놓고 용도에 대한 여야의 해석이 엇갈렸다.

金정보위원장은 "정보위가 열릴 때마다 안기부 사람들이 안기부와의 연락을 위해 사용하는 방" 이라고 주장한 반면, 박희태 (朴熺太) 한나라당 총무는 "비화기 전원이 켜져 있는 걸로 보아 상주하면서 사용한 것 같다" 고 단정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동안 증거보전 신청을 해야 한다며 문앞을 교대로 지켰지만 확인한 것 외에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돌발적인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날 행동엔 쉴새없이 몰아치는 검찰 사정과 이를 '방조' 하는 여권에 대해 '몽니' 를 부리는 측면이 큰 것으로 보였다.

이상렬.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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