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국내외 의학계]눈부신 진보…거듭된 윤리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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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비아그라에서 인간복제까지.' 올 의학계가 거둔 성과다. 사실 올해만큼 의학 소식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도 드물었다. 질병퇴치는 물론 인류의 사상과 문화, 생활습관에까지 영향을 미칠 중요한 의학적 개가가 잇따라 등장했다. 98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군 국내.외 의학계 소식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살펴본다.

[국내]

*** 파문 불러일으킨 인간복제실험

국내 의료진의 인간배아 복제실험 성공발표가 국제적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경희의료원 불임클리닉 이보연교수팀은 12월 정자 대신 몸의 세포에서 핵을 떼어내 난자에 이식시키는 인간배아 복제에 성공, 4개 세포 단계까지 분열하는 것을 관찰했다고 발표했다.

영국 로이터통신과 미국 뉴욕타임스지 등 세계 주요 언론은 학계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언론에 공개한 점, 복제성공은 최소한 8개 세포 단계까지 분열하는 것을 관찰해야 함에도 4개 세포 단계에서 발표한 점을 일제히 비판했다.

또 국내 시민단체와 종교계는 이교수팀의 인간복제실험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비도덕적 실험이라며 항의집회를 갖기도 했다.

*** 뇌사 인정... 장기기증 활성화 기대

뇌사를 공식 인정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안'이 12월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상정됐다.

법률안의 골자는 뇌사를 법률적 죽음으로 인정하고 뇌사판정기준과 장기적출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어기면 최고 무기징역 등 엄격한 법률적 제제를 가하는 것. 현재 법안 통과에 대해선 여야 간 이견이 없으므로 빠르면 2000년초부터 공식시행될 예정이다.

뇌사를 법적 테두리 안으로 수용함에 따라 앞으로 뇌사자 장기이식이 활발하게 시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 O-157발견등 전염병 전국 강타

지난 여름 이상고온과 집중호우로 이질 등 전염병이 전국을 강타했다. 작년 4명에 불과했던 이질 환자는 보건복지부 공식집계로만 7백여 명. 실제 감염자는 수천 명에 달할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경상북도 일대 초등학교에서 비롯된 이질은 전국에 퍼져 많은 이들이 배탈과 설사, 고열로 격리 입원했다. 유행지역에선 휴교령과 급식제한까지 실시되는 소동을 빚었다.

일본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낳은 공포의 병원성 대장균 O - 157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11월 복통과 구토로 서울대병원을 찾은 7세 어린이에게서 O - 157세균이 확인되어 우리 나라도 더 이상 O - 157 안전지대가 아님이 입증됐다.

*** 두 가계에서 위암 유전자 찾아내

대물림 위암유전자가 국내에서도 발견됐다. 서울대병원 박재갑교수는 12월 국내최초로 집 안에 암이 많이 발생하는 아홉 가계 가운데 두 가계에서 위암유전자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올 초 뉴질랜드 연구진에 의해 세계최초로 규명된 위암유전자가 국내에서도 확인된 셈. 국내 암 발생 1위인 위암은 그 중 10%가 유전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직계 가족 중 3명 이상 위암에 걸렸고 이중 최소 1명이 50세 이전 발병했다면 유전성 위암을 의심해볼만 하다.

*** 의약분업 시안 진통끝에 확정

'의사는 처방, 약사는 조제'에 전념해 약물남용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의사와 약사는 물론 학계와 소비자단체, 언론이 참여해 구성한 보건복지부 의약분업추진위원회는 11월 논란 끝에 의약분업 최종시안을 마련했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심의 중인 의약분업연기를 골자로 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부결된다면 약사법에 따라 내년 7월 1일부터 의약분업이 시행된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약사 임의조제를 대폭 줄이고 상품명 대신 성분명을 사용하며 병원약국의 조제를 인정하는 예외규정을 철폐하는 등 완전의약분업을 실시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또한번 논란이 예상된다.

*** 노화방지 효소 세계최초로 규명

노화방지효소를 규명한 서울대의대 생화학교실 이한웅교수의 논문이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네이처' 4월호의 중점보도논문으로 채택됐다.

이교수는 유전자파괴 쥐를 이용, 쥐의 텔로머라제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파괴하면 노화가 촉진된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실험적으로 입증해 낸 것. 중점보도논문이란 전문 (全文)이 모두 실리는 것으로 수십 편의 게재 논문 가운데 단 한 편만 선정된다. 한국인 과학자의 연구논문으론 이번이 처음이다.

[국외]

*** '남성 불능에 복음' 비아그라 판매

'고개 숙인 남성'에게 올해는 기념비적인 해. 미식품의약국은 3월 미국 파이저사가 개발한 먹는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의 판매를 승인했다. 비아그라는 발매 6개월 만에 8억 2천만달러 (약 1조원)의 기록적인 매출액을 올렸으며 미국에서만 6백만건의 처방이 이뤄졌다.

국내에서는 아직 시판승인이 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여행자와 보따리 장수를 통해 밀반입되어 원가보다 서너 배 비싼 1알당 4~5만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 인간.소 세표 반수반인 실험 성공

미국의 유전공학회사 ACT사는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과 공동으로 11월 인간과 소의 세포를 융합시켜 자라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5차례 이상 분열을 거듭해 순조롭게 자라고 있는 이 세포가 장래 어떤 모습을 지닐 지에 대해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 연구진은 이 실험이 복제인간 대신 거부반응이 없는 장기를 대량생산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며 특허를 출원했으나 '변조동물' 탄생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 특허를 획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동물 유전자 사상최초 완전해독

사상 최초로 동물의 유전자가 완전 해독됐다.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12월 미국 워싱턴대와 영국 생거연구소팀이 공동으로 땅 속에 사는 벌레의 일종인 선충의 유전자 2만여개와 이를 구성하는 염기쌍 9천 7백만개를 모두 밝혀내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인류가 밝혀낸 생물 유전자는 대장균과 효모 등 10여 종으로 모두 단세포생물. 다세포생물인 동물의 유전자가 규명되기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선충 유전자의 40%가 인간과 같아 인간 유전자의 생체내 기능을 밝혀내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인간 유전자는 모두 8만여개로 30억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되며 절반 가량이 밝혀져 있다.

*** 꿈에 그리던 암 치료제 개발 발표

종양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을 차단해 암을 치료하는 암치료제도 개발됐다. 뉴욕타임스는 5월 미국하버드대 주다 포크먼박사가 개발한 암치료제 안지오스타틴과 엔도스타틴을 쥐에게 투여한 결과 25일만에 암이 사라졌다고 보도해 화제를 모았다.

최근 미국립암연구소는 암환자 치료에서 같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발표했고 포크먼박사는 미국립암연구소의 결과가 자신의 방법을 제대로 적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하는 등 아직 결론을 얻지 못한 상태. 2~3년 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끝나야 확실한 결론이 내려질 것 같다.

*** 뇌사자 팔 이식...피부감각 회복

프랑스 의료진이 9월 뇌사자가 기증한 팔을 사고로 팔을 잃은 사람에게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팔이나 손가락이 절단됐을 경우 다시 붙이는 수술은 여러 번 성공했으나 다른 사람의 팔을 붙이긴 이번이 처음. 이식받은 사람은 89년 톱 사고로 팔을 잃은 40대 사업가.

현재 이식받은 팔은 손목과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으며 피부감각도 살아난 상태.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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