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유골함 사라진 8월 4일 밤 17.5m 뒤 CCTV는 지켜보고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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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① 4일 오후 10시2분 짧은 머리에 군복 형태의 옷을 입은 용의자가 최진실씨의 봉안묘 앞에 서 있다.
② 오후 10시45분 모자를 눌러쓴 용의자가 최씨의 봉안묘를 망치로 여러 차례 내리치며 깨뜨리고 있다. ③ 오후 10시46분 용의자가 깨진 봉안묘 속에서 유골함을 꺼내 들고 나가고 있다. [양평경찰서 제공]

고(故) 최진실씨 유골함은 치밀한 사전 준비를 거쳐 도난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발생 시기도 당초 알려진 이달 14~15일보다 10여 일 전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도 양평경찰서는 20일 최씨의 분묘 훼손 및 유골함 절도 장면이 찍힌 CCTV(폐쇄회로TV) 녹화 화면을 공개했다. CCTV는 최씨 납골묘에서 17.5m 떨어진 곳에 설치돼 있다.

녹화 화면에 따르면 4일 오후 9시55분에서 10시48분 사이 30대 중반~50대 초반의 남성 한 명이 망치를 이용해 분묘를 깨고 유골함을 훔쳐 갔다. 범인은 최씨 분묘에서 53분 동안 머무르며 마대자루에 담아온 망치를 꺼내 분묘 뒤쪽 벽면의 가장자리를 세차게 내려쳐 깨뜨린 뒤 지름 23㎝의 유골함을 탈취해 사라졌다.

녹화 화면 속의 범인은 처음에는 모자를 쓰지 않고 있다가 이후에 등산용 모자를 쓰고 나오기도 했다. 군복 무늬 긴 바지와 조끼, 밝은 색깔의 티셔츠를 입고 검은색 단화를 신고 흰색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범인은 다음 날인 5일 오전 3시36분쯤 묘역에 다시 나타났다. 위장해 놓은 조화와 사진패널을 치운 뒤 걸레로 정성껏 묘분을 닦았다. 지문 등 자신의 범행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물통을 들고 와 물걸레질을 한 번 더하고 5분 뒤인 오전 3시41분에 화면에서 사라졌다. 범인이 현장을 떠난 뒤 묘역 주변에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춰졌다.

양평경찰서 우재진 수사과장은 “녹화 화면이 흑백인 데다 흐릿하게 나와 용의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화면을 정밀 판독해 신원이 파악되면 공개 수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범인이 ▶망치·목장갑·등산모자 등을 미리 준비해왔고 ▶ 범행 후 깨진 부분을 조화를 가져다 은폐했고 ▶묘지를 청소한 점으로 미뤄 전문가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서 확보한 깨진 분묘 조각의 지문감식 결과에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이에 앞서 유골함 도난 사실을 신고한 묘지 관리인은 사건 발생 시점을 14일 오후 6시∼15일 오전 7시50분 사이라고 주장했다. 최씨의 분묘가 있는 갑산공원 전병기(59) 관리소장은 “범인이 최씨 분묘 벽면을 꽃바구니와 사진으로 가려놓은 상태여서 벽면이 깨졌는지 알 수 없었다”며 “발견 당시에는 분묘 주변에 소주병 2개가 놓여 있어 분묘를 자세히 살펴보다 깨진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CCTV는 12일 새벽 낙뢰를 맞아 14~15일 사이에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6월 27일∼8월 12일 사이의 녹화 화면이 남아 있어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범인의 행적을 녹화한 새로운 단서를 찾게 됐다. 경찰은 “‘낙뢰로 인한 녹화 정지’라는 분석은 설치업체 판독 결과를 인용해 왔던 것일 뿐 경찰이 자체적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동일 수법 전과자와 주변 탐문수사를 통해 범인의 행적을 추적 중이다. 공범 여부와 관련, 우재진 수사과장은 “여러 사람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수십 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주용 차량을 최씨 분묘 인근에 세워뒀다가 함께 달아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CCTV에는 공원 주차장에서 차를 돌려 나가는 차량의 라이트가 확인됐다.

유골함의 도난 사실을 신고한 시점이 실제 사건 발생 시점보다 10일 뒤에야 이뤄진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갑산공원에는 직원 한 명이 공원에 상주하며 24시간 묘원을 관리하고 있다.

양평=전익진·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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