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훈 장관 경질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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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DJ 정권 출범 후 민간경영인 발탁 케이스로 입각한 정보통신부 배순훈 (裵洵勳) 장관이 '빅딜 반대' 파문에 휘말려 좌초했다.

그가 전격 '경질된' 직접적 원인은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피력하는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방향과 다른 목소리를 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裵장관은 지난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월례 조찬 간담회에서 "빅딜이란 근본적으로 과잉투자를 해소하는 것인데 전체 매출 중 수출이 95%를 차지하는 대우전자를 빅딜에 포함시킨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고 밝힌 바 있다.

또 "아직도 대우전자 직원으로부터 회사로 돌아오라는 전자우편을 받고 있다" 며 대우측과의 관계를 강조했으며 "전에 기업에 있을 때는 김우중 (金宇中) 회장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모든 일을 신속히 결정했으나 장관이 되고부터는 되는 일이 없다" 며 '공무원 사회' 를 싸잡아 비판했다.

裵장관은 이외에 여러 차례의 '돌출 발언' 으로 주목받았다.

업무 장악력을 둘러싼 시비도 그치지 않았으며 국회 및 다른 국무위원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못했다.

이와 관련,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裵장관의 개혁 의지가 부족하고 부처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고 퇴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밖에 개인휴대통신 (PCS) 등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정부 입장과 달리 "한국 통신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다섯개 업체가 많다고 볼 수 없다" 며 인위적 구조조정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裵장관은 국내 통신업체의 외국인 지분 상한을 내년부터 33%에서 49%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회가 이를 반대하자 "외자유치를 위한 규제완화를 국회가 막고 있다" 고 말해 마찰을 빚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한국통신이 보유한 SK텔레콤 지분을 조기 매각하려고 했으나 담당 공무원이 이를 "장관의 사견" 이라고 말하는 등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裵장관은 18일 오후 5시 '자의반 타의반' 으로 사표를 제출했지만 이미 자신의 퇴진을 감지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날 오전 한국CALS/EC협의회가 주최한 초청 간담회에서 "나는 목이 반쯤만 붙은 사람" 이라고 말하는 등 체념한 모습을 보여 참석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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