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의 파리에세이]'풍요속 빈곤'의 서러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베아트리스는 중.고생 세 딸을 키우며 혼자 살고 있는 프랑스의 40대 여성. 슈퍼마켓 계산원이 유일한 직업이었지만 나이에 밀리면서 7년째 실업자 신세다.

처음 몇년은 실업수당으로, 다음엔 정부의 최소생계수당 (RMI) 으로 버티고 있다.

베아트리스가 매달 받는 돈은 3천6백프랑 (약 79만원) .4인가족이 그럴듯한 식당에서 너댓번 저녁식사를 하면 그만인 돈으로 그녀는 한달 집세에서 식비까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녀에겐 옷을 사본 기억이 없다.

외식은 꿈도 못꾼다.

피자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동네 피자집에 들러 손님들이 먹다 남긴 피 자조각을 얻어다 먹인 일도 있다.

염치는 오래전에 잊었다.

세밑을 맞아 프랑스 공영 텔레비전 (F2) 이 방영한 다큐멘터리 '혼자사는 엄마들' 은 프랑스 사회의 밑바닥을 숨김없이 보여준 충격적인 프로였다.

장작불을 지펴 데운 물로 딸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선진국이 뭐고, 사회보장제도가 뭔지 곰곰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베아트리스처럼 RMI로 연명하는 프랑스 사람은 2백만명. 최저생활비에 못미치는 수입으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극빈층이 전체 인구의 12%인 7백만명이다.

제도는 잘 돼 있을지 몰라도 개인 차원에서 남을 돕는 데 몹시 인색한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 공영방송은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을 벌인다.

올해도 30시간 생방송으로 4억5천만프랑 (약 9백80억원) 을 모금, 역대기록이라며 선전이 요란하다.

하지만 자선냄비에 돈이 쌓이지 않아 짜낸 고육지책일 뿐이다.

중요한 건 역시 제도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따뜻한 인정이 아닐까 싶다.

배명복 파리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