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과과학]눈 많이 오는 해엔 보리농사가 풍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굵은 눈발이 쏟아지면 제일 기뻐하는 이들은 어린이들과 연인들. 더불어 보리농사를 짓는 농부들도 마음이 흐뭇하다. '눈이 많이 오는 해엔 보리농사가 풍년이다'라는 옛말 때문이다.

적설량이 많으면 보리농사가 풍년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매우 근거가 있는 얘기다. 대기중에서 눈이 만들어지는 것은 수증기를 많이 함유한 공기가 상승해 냉각되는 현상. 비가 생기는 원인과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일단 눈이 많이 오면 비와 마찬가지로 보리가 봄철 가뭄에 대비할 수 있는 수분을 많이 공급해 준다.

더우기 봄철은 보리가 한창 자랄 때. 더불어 눈은 보리에게 한 겨울 이불같은 존재도 돼 주기도 한다. 보리는 보통 지방에 따라 9월말부터 심기 시작해 제주도를 끝으로 11월 중순이면 보리 파종이 끝난다.

눈이 가장 자주 내릴 무렵인 1월부터는 잎이 6개정도 돋은 상태에서 추위 때문에 성장이 멈춘다. 이때의 보리 키는 대략 10㎝정도지만 비스듬히 누워있는 상태에 땅 밖으로 3~5㎝정도 돋아있다. 이때 눈이 보리를 덮어줄 정도의 두께인 3~5㎝로 적당히 내려주면 잎은 얼어죽더라도 땅 표면 바로 밑에 있는 보리의 '생장점'은 따뜻하게 보호되는 것.

'생장점' 이란 보리에서 가장 세포분열이 왕성하게 일어나는 부분. 2월 초순이 돼 날이 따스하게 풀리면 이곳에서부터 보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해 5월말에서 6월초가 되면 수확하기 좋을 정도까지 익는다.

눈이 내는 보온효과는 눈과 얼음으로 짓는 에스키모의 집 '이글루'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눈은 열을 전달하지 않는 물질이기 때문에 쌓여 있는 눈 밑에는 따뜻한 기온이 유지되는 것이다.

한 학자가 실험해 본 바에 따르면 눈 표면 위의 온도가 영하 17℃일 때 눈 5㎝밑의 온도는 영하 11℃, 50㎝밑의 온도는 영하 1.6℃였다는 것. 따라서 옛날 조상들은 눈이 적게 오면서 유달리 추웠던 해엔 퇴비를 덮어주는 등 보리가 얼어죽는 것을 막으려 애썼다.

그러나 요즘에는 추위에 강한 보리품종들이 많이 개발됐고 겨울에도 보리가 얼어죽을 만큼 춥지 않아 눈과 보리풍작과는 크게 상관이 없어졌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