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나라의 거목 쓰러져” JP“고인의 명복을 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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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18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영삼(YS)·김대중(DJ)·김종필(JP). 이른바 ‘3김(金)’이다.

이들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정치의 최일선에 서 있었다. 70년대와 87년 이후엔 한국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YS와 DJ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통령이 됐다. JP는 ‘2인자’로서 권력을 만들어냈고 공유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3김 시대’였다. 그중 한 명인 DJ가 18일 서거했다.

“아쉽고도 안타깝다. 나라의 큰 거목(巨木)이 쓰러졌다고 생각한다.”

YS는 이날 오후 가족과 함께 차를 마시다가 DJ의 서거 소식을 듣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후 5시30분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DJ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그는 “만감이 교차한다. 오랜 동지이자 경쟁자가 돌아가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생각나는 관계나 상황이 있느냐”란 질문에 “너무 많다. 평생을 같이 해서…”라고 말했다.

YS와 DJ는 YS의 표현대로 “오랫동안 경쟁하고 동시에 협력해온 사이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특수 관계”였다.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등 군사정권과 싸우며 민주화를 이끌 때는 협력자였다. 하지만 87년 이후엔 반목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화해는 양 진영의 오랜 숙제였고 지난 11일 YS가 DJ를 병문안하면서 그 숙제가 풀렸다. YS는 당시 “화해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게 봐도 좋다. 이제 그럴 때도 됐고…”라고 답했었다. YS의 측근인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DJ의 서거에 대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그분의 업적을 기리고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죽음 앞에서 한, 두 분의 화해가 우리 사회 갈등 해소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JP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고 한나라당 정진석 의원이 전했다. JP를 잘 아는 인사들은 JP가 평소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말해왔던 점을 감안, “착잡하고 덧없다고 느낄 것”이라고 전했다. 주변에선 “JP가 지난해 뇌졸중을 앓았고 지금도 재활치료 중이어서 조문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DJ와 JP는 40여 년 정치 역정의 대부분을 반대 진영에서 보냈다. DJ가 ‘3수(修)’ 만인 61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가 3일 만에 당선무효가 된 건 JP가 주축이었던 5·16 군사쿠데타 탓이었다. JP가 박정희 시대에 제2인자로 승승장구할 때 DJ는 해외 망명과 납치사건을 겪었다. 하지만 97년 대선을 앞두고 두 사람은 내각제 개헌에 합의하며 후보 단일화를 이뤘다. DJ가 대통령, JP는 총리가 됐다. 두 사람의 이념 차는 하지만 2001년 10월 결국 파국을 불러왔다. 임동원 당시 통일장관 해임건의안 처리가 계기였으나 근본적으론 DJ의 대북 유화책을 JP가 불신한 측면이 컸다.

◆요양 중인 노태우 전 대통령도 충격=전두환 전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날 줄 몰랐다”면서 “지난 수십 년간 파란 많은 정치 역정을 걸어왔는데 이제 천주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DJ가 사형을 선고받았을 당시 그는 계엄사령관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병문안 때 “김대중 대통령이 현직에 계실 때 전직들이 제일 행복했다”는 말을 남겼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강원도 용평에서 요양 중에 TV로 DJ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한 측근은 “기관지 수술을 해 말씀을 못하지만 큰 충격을 받으셨고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고 전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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