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중위 죽음 '은폐' 없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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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판문점 경비병들이 북한군과 접촉한 사실이 뒤늦게 터지면서 이들을 지휘했던 소대장 김훈 (金勳) 중위의 죽음도 그 진상이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찍이 죽음을 자살로 단정했던 군당국은 이 압력에 밀려 군수사기관과 민간검찰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으로 전면 재수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사건발생은 2월 24일이었다.

그동안 3군부사령관까지 지낸 金중위의 아버지와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끈질긴 추적으로 자살로 보기 어렵다는 새로운 증거가 많이 제시됐건만 군당국은 이를 외면하다가 이제서야 부산을 떨고 있다.

때문에 이 사건은 군의 고질적인 축소.은폐 지향주의를 압축하고 있다.

군은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면 원인을 파헤쳐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상부의 문책이 두려워 최대한 이를 쉬쉬하고 덮으려는 관성 (慣性) 을 보여 왔다.

이 때문에 자녀를 군에 보내는 부모들, 특히 자유분방한 문화에서 성장한 신세대를 군조직 속에 밀어 넣어야 하는 부모들은 불안감을 지녀 온 것이 사실이다.

많은 부분에서 군에 대한 신뢰가 있지만 '사고와 진실' 에 대해선 그렇지 못하다.

金중위 사건은 바로 판문점 벙커에서 일어났고 일부 부하의 북한군 접촉이라는 정황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단순사고가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군은 특히 사건수사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철저함에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군은 우선 수사의 기본인 정황.증거조사에 허술했다.

金중위가 사망하기 수십일전 북한 경비장교가 귀순했다.

그는 한국군 경비병에 대한 북한의 포섭활동을 증언했다.

귀순과 관련해 보복하겠다는 북측의 공언도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수사에서 이런 상황이 정밀하게 분석됐어야 했다.

군은 "경비병들을 내사했지만 대공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고 해명하지만 대북접촉의 핵심인물인 김영훈중사에 대해선 그 기미조차 모르고 있었질 않는가.

자살이라고 단정하려면 일반인이 납득할만한 자살동기를 제시해야 하는데 군은 지금도 말을 더듬는다.

"아버지는 3성이었지만 나는 4성을 달겠다" 고 했다는 씩씩한 초급장교가 격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는가.

1차조사가 부실했다면 6월께부터 진행된 2차조사에서만큼은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사인규명이 이뤄졌어야 했다.

金중위의 아버지는 단신으로 뛰면서 소대원들의 증언을 받아내는 등 애를 썼는데 군검찰부라는 공식조직은 굼벵이 같았다.

정황이 이러하므로 군이 사실을 놓친 게 아니라 문제의 확산과 문책이 두려워 이를 축소.은폐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이번의 합동조사에서는 金중위의 사인 (死因) 뿐만 아니라 군당국의 은폐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군의 합동조사단이 진실규명에 실패하면 국회가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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