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죄기 시작하자 중국 증시 급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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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상하이 증시가 폭락한 17일 현지의 한 투자자가 증권사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상하이 로이터=연합뉴스]

‘최고의 악재는 주가가 많이 오른 것이다’.

요즘 중국 증시 상황에 어울리는 증시 격언이다. 올 들어 세계 주요국 증시 가운데 가장 많이 올랐던 중국 증시가 지난 5일 이후 급락하고 있다. 상하이종합지수 3000선이 힘없이 무너졌다. 예상보다 가파른 중국 증시의 조정이 자칫 ‘중국발 쇼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17일 상하이종합지수는 176.34포인트(5.79%) 떨어진 2870.63으로 마감했다. 3000선과 2900선이 한꺼번에 무너진 것이다. 상하이종합지수는 4일 연중 최고치(3478.01)를 기록한 뒤 조정을 받아 9거래일 만에 17.5%나 빠졌다.

중국 증시는 올 들어 쉼 없이 90% 넘게 상승했다. 이 같은 주가 급등에다가 중국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마저 사상 최고가로 달아 오르자 중국 정부가 나섰다. 인민은행은 이달 초 통화정책 보고서를 통해 “경제 상황과 물가 상승에 맞춰 필요하면 미세 조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풀린 돈이 기업이 아닌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몰려 거품이 생기자 이를 조절키로 한 것이다. 이는 시중에 푼 자금을 점차 거둬들이는 일종의 ‘출구전략’이 시작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 인민은행은 지난주에만 환매조건부채권(RP) 발행 등을 통해 1950억 위안(약 35조원)의 시중 자금을 회수했다. 예상보다 미세 조정의 강도가 강한 것이다.

여기에 물량 압박까지 더해졌다. 하반기엔 비유통주로 묶여 있던 5000억 주의 물량이 쏟아져 나온다. 기업공개(IPO)도 다시 시작되면서 신규 상장도 잇따르고 있다. 한화증권 조용찬 수석연구위원은 “주가는 비싸고 주식 물량은 넘치는데, 정부는 통화를 거둬들이고 있어 10월 정도까지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중국의 통화정책 변화가 국내 증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 증시는 2004년 4월 ‘차이나 쇼크’를 겪었다. 당시 중국이 재할인율을 인상하는 긴축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코스피지수가 22% 넘게 급락했다.

증시 전문가는 대체로 2004년 같은 강도는 아니지만 중국 증시의 조정이 국내 증시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국내 증시 흐름에 2개월 정도 앞서 움직여온 중국 증시가 큰 조정을 받았기 때문에 코스피지수의 조정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정의 강도는 이미 3000선이 깨진 중국 증시가 얼마나 버텨주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 팀장은 “중국 정부가 경기회복 속도를 늦출 정도로 자금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조정 폭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대신증권 조윤남 투자전략부장은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의 상승 추세가 꺾일 정도의 조정은 오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국내외에서 경기 개선 지표가 계속 나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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