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2국' 비관이 만들어낸 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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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2국
[제3보 (37~63)]
黑.이세돌 9단 白.이창호 9단

현 시국을 어떻게 볼 것이냐. 낙관이냐, 비관이냐. 바둑판에서도 언제나 이것이 문제다. 이것은 곧 전략의 시작이자 마지막이기도 하다.

사태가 낙관적이라면, 적어도 불리한 국면은 아니라면, 평소의 온건한 보폭이면 된다. 비관적이라면 수를 써야 한다. 방책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재빨리 최강의 승부수를 동원하는 쪽도 있고 사방을 흔들어 현 상태의 고착을 방해하는 쪽도 있다.

낙관이란 편하고 좋은 것이어서 암이 저절로 낫듯 사태가 저절로 풀리는 의외의 보너스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낙관은 대개 사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하수들의 몫이다.

이세돌9단은 비관에 젖어 있다. 상변을 그럭저럭 타개하고 55의 요처에 손을 돌리자 관전하는 프로들조차 '긴 승부'라는 분위기였으나 당사자인 이세돌은 아니었다. 그는 전류와 같은 감각으로 미래의 흐름을 예감하며 지옥과 같은 후반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56은 이창호9단에 의해 널리 유포된 느릿함의 표본 같은 수다. 이 장면에선 너무 느리다고 비웃던(?) 프로들도 지금은 흑▲ 한 점을 당장 요절내려 들지않는 이 평범한 수의 함축성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생각하면 이창호는 얼마나 많은 '쉬운 수'를 개발했는가. 그의 창의력은 평범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데 있다.)

이세돌은 57로 뛰어든다. 백 60에서 10급도 아는 '참고도'의 정석을 외면하고 61로 쭉 민다. 62로 가로막자 63으로 뚝 끊어버렸다. 비관이 만들어낸 초강수. 백병전이 시작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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