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눈꽃 순환열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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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옛날 유럽인들에게 여행이란 힘든 일이자 고통이었다.

영어에서 여행을 뜻하는 트래블 (travel) 의 어원 (語源) 인 라틴어 트리팔리움 (tripalium) 은 몽둥이가 셋 달린 고문도구를 뜻한다.

같은 어원에서 나온 프랑스어 트라바유 (travail) 도 노동.일이란 뜻이다.

여행이고통에서 즐거움으로 바뀐 것은 교통수단의 발달 때문이다.

19세기 기차의 발명으로 철도여행이 시작되면서 유럽인들은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는 '관광열차' '화통' 등 기차를 주제로 한 음악을 작곡했고, 안톤 드보르자크는 매일 프라하역에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기록하는 게 취미였다.

레프 톨스토이 소설엔 열차가 자주 등장하는데, 만년에 그가 집을 나와 방랑하다가 객사 (客死) 한 곳도 기차역이다.

자동차와 비행기의 등장으로 기차의 인기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TGV, 일본의 신칸센 (新幹線) , 독일의 ICE 등 초고속열차 등장으로 옛날의 인기를 되찾고 있다.

일반기차도 젊은이들의 배낭여행뿐 아니라 가족단위 여행의 교통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동안 퇴물 취급을 받던 증기기관차까지 옛 추억을 되살리는 낭만적 교통수단으로 다시 등장했다.

유럽은기차여행이 잘 발달해 있다.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를 거미줄처럼 잇는 철도망은 어디든 빠르고 편안하게 연결해준다.

특히 지난 94년 5월 유럽대륙과 영국을 해저 (海底) 로 연결하는 유러터널이 개통돼 런던~파리, 런던~브뤼셀 고속열차 유러스타가 운행을 개시함에 따라 유럽은 다시 한번 철도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철도여행 붐이 일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인기를 끄는 것이 '테마관광열차' 다.

봄철 벚꽃열차를 시작으로 등산열차.바다열차.섬열차.문화탐방열차.신혼열차.단풍열차.젓갈열차.온천열차 등 갖가지 아이디어의 관광열차가 등장하고 있다.

TV 드라마 '모래시계' 로 유명해진 동해 정동진의 일출을 관광하는 해돋이열차는 지난해 22억원의 수입을 올려 최고 인기열차로 자리잡았다.

철도청은 다음달에 서울 청량리역을 떠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태백선 추전역과 기차를 타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영동선 승부역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눈꽃 순환열차' 를 운행한다.

겨울의 낭만을 즐기면서 오래 남을 추억거리를 만들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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