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 도로” VS “죽은 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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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 “최상의 도로다”=쌍용대로 두정동~성정동 1.5㎞ 구간 양쪽에 설치된 이면도로. 공무원들은 전국에서 유일한 구조의 도로로 ‘최상의 도로’ ‘모범사례’라고 꼽는다. 건설 당시 선진화된 기법을 사용했고 시범모델을 적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교통영향평가를 거쳐 충남도와 국토해양부(당시 건설교통부)의 심의·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절차상으로도 적법하다는 게 공무원들의 주장이다.

두정동 지역 아파트 입주민들의 호소에 대해 천안시 건설도로과 담당 공무원은 “이면도로에 대한 문제점을 알고도 입주했으면서 이제 와서 불만을 토로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한 번 만들어진 도로인데 바꿀 수는 없다. 법과 절차도 까다롭고 예산도 많이 들어간다”며 “무엇보다 지금의 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천안 서북구 건설교통과 공무원은 “도로는 정상인데 운전자나 시민들이 법규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다”며 “교통법규를 100% 완벽하게 지키면 설령 도로가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사고가 날 까닭이 없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도로 개선에 대해 “교통영향평가를 다시 받아야 하며 시에서 용역을 재발주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교통공학 교수들 “개선책 시급”=공주대 이선하(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이미 건설된 도로의 구조나 시스템을 바꾸는 데는 굳이 교통영향평가가 필요 없다”며 “택지개발이나 백화점, 아파트 건설 등이 아니기 때문에 도시교통정비기본계획에 따라 시 자체적으로 도로를 개선하거나 기능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 도로는 처음부터 보행자가 아닌 운전자 위주로 만들어진 도로”라며 “최근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된 저탄소 녹색성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도로”라고 지적했다.

그는 쌍용대로 이면도로의 가장 큰 단점에 대해 ‘보행자·자전거 이용자의 동선(動線) 단절’을 꼽았다. 소통위주로 도로를 만들다 보니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의 편의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건널목에 있는 인도의 높이를 예로 들었다. 현재 쌍용대로 이면도로에서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서는 30㎝ 가량이나 되는 인도의 턱을 오르내려야 한다. 노인이나 어린아이들에게는 장애물 수준이다. 이 정도 높이는 자전거 통행도 불가능하다.

이 교수는 ‘TSM(Traffic System Management·교통체계관리)’을 통해 도로의 문제점을 파악한 뒤 개선방향을 찾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또 자전거 전용 동선과 보행자를 고려한 신호체계, 사고다발지역에 대한 원인(사고형태) 분석을 통해 설계를 변경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안시 서북구 성정동 여성회관(신한은행)사거리. 이 곳부터 북쪽으로 북부대로까지 1.5㎞ 구간은 도로 양쪽에 이면도로가 설치돼 있다. 이면도로는 구조적 문제와 불법 주·정차, 교통안전시설물 미흡 등으로 교통· 인명사고 빈발하면서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 = 조영회 기자]

◆교통시설담당 경찰 “당장 고쳐야”=천안서북경찰서 교통시설담당 경찰관은 현재 쌍용대로 이면도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죽은 도로’라고 했다. 지금 상태로 두면 더 큰 인명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그는 “이면도로의 폭이 5m인데 이 정도면 차량 2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다”며 “처음 설계 때부터 5m로 한 것은 불법주차를 묵인해주겠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운전자나 보행자가 법규를 100% 지키면 문제가 없다는데 그렇다면 교통경찰도 필요가 없게 된다”며 “어떻게 하면 사고를 줄이고 시민들의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순리”라고 했다.

담당 경찰관은 “기존 시설물을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예산이나 공사기간 등을 감안하면 (천안)시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며 “과속방지턱이나 교차로 교통섬 설치, 건널목 위치 변경 등 많은 예산이 들어가지 않는 개선책을 당장이라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면도로를 모두 없애고 차선을 한 두 차선 늘리게 되면 쌍용대로~북부대로를 이용하는 차량들의 소통이 원활해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이면도로 두 차선을 인도화하고 현재 인도를 차로로 만드는 게 최선의 대안”이라고 했다.


< 이면도로 위험천만 사례 >
1. 우회전 진입이 불법이라니…

천안 두정동에 직장을 둔 조모(28)씨는 얼마 전 퇴근 길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골목길에서 나와 쌍용대로로 진입하다 이면도로에서 나오던 화물차와 추돌했다. 사고로 조씨 차는 범퍼가 부서졌다. 조씨는 당연히 골목길에서 대로로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곳은 직진불가 도로였다. 이 곳엔 직진금지 표지판이 없어 조씨와 같은 사고를 당하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사고는 조씨의 100% 잘못은 아니었다. 이면도로에서 나오던 차량 역시 법규를 위반했다. 일방통행 이면도로에서는 직진이나 좌회전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오직 우회전만이 가능하다. 두 차량 운전자는 “직진이나 좌회전을 금지한다는 표지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런 도로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호소했다.

2. 아이와 도로 건너다 치일뻔
천안 두정동 계룡리슈빌 아파트에 사는 주부 이모(38)씨는 얼마 전 버스를 타기 위해 단지를 나오다 가슴 철렁한 일을 당했다. 네 살 난 아들 손을 잡고 5m 남짓한 이면도로를 건너다 달려오던 차량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와 이면도로 사이엔 완충지대가 없다. 이면도로엔 과속방지턱이나 보행자의 통행을 볼 수 있는 반사경도 설치돼 있지 않다. 이면도로는 시속 30㎞로 제한됐지만 이를 지키는 운전자는 드물다. 이 때문에 어린이나 자전거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3. 자전거 도로 하나 없으면서…
천안 두정중학교에 다니는 정모(15)군.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하다 얼마 전 자동차와 부딪혀 팔을 다쳤다. 그나마 큰 사고를 당하지 않았지만 교사와 정군의 부모는 몇 번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정군이 이용하는 자전거도로는 인도 겸용으로 폭이 1.5m 내외다. 하지만 인도 중간에 나무가 심겨져 있고 곳곳에 불법간판이나 시설물이 점거해 하 이면도로로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밖에 없다.

정군은 학교가는 길에 이면도로를 지나다 우회전해 들어오는 차와 부딪혔다. 운전자는 “왜 자전거를 타고 도로로 다니냐”고 정군을 나무랐지만 정작 이면도로가 아니면 정군처럼 자전거를 타는 학생이 다닐만한 길은 없다. 이 학교 교사들은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와보지도 않는다”고 호소했다.

4. 손님들에게 도로 조심 당부
성정동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편명숙(49·여)씨는 물건을 구입한 손님들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나갈 때 차 조심하고 이면도로를 건널 때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면도로를 이용하는 차들이 속도를 지키지 않아 손님들이 놀라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편씨는 “손님들이 나갈 때마다 ‘아차’ 싶을 때가 많다. 상가 점포주들이 과속방지턱을 설치해달라고 몇 번이나 민원을 제기했지만 (시에서는)묵묵부답”이라고 했다. 그는 "차가 과속에 역주행까지 하고 시민들은 그 길을 걸어 다니는 데 이게 무슨 도로냐”고 지적했다.



◆쌍용대로=당초 쌍용지하차로부터 성정동 주공6단지 앞까지 3km로 건설됐으나 북부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면서 두정동까지 2002년 말 1.5km가 연장됐다. 기존 구간은 왕복 6차로로 건설됐으나 북부토지구획정리지구는 ‘왕복 4차로+이면도로’라는 특이한 구조로 건설됐다. 쌍용대로 북단은 북부대로와 연결돼 있다. 북부대로가 천안IC와 연결되는 2012년에는 쌍용대로 교통량도 자연히 증가될 걸로 예상돼 현행 ‘이면도로 체제’로는 교통량을 감당 못 할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1. 천안시 두정동 계룡리슈빌 아파트 앞 이면도로. 쌍용대로 북쪽 끝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인도가 없이 도로가 맞붙어 있지만 일방통행이나 속도제한을 알리는 표지판이나 표시가 없다. 과속방지턱과 반사경도 설치돼 있지 않아 제한속도 시속 30㎞ 이상으로 달리는 차량 때문에 교통사고가 빈발한다.

2. 쌍용대로 부성초등학교 인근 이면도로. 이면도로는 주·정차 금지구역이지만 불법 주·정차차량들로 통행 자체가 어려운데다 운전자들이 역주행까지 일삼아 하루 평균 1~2건의 접촉사고가 발생한다. 이면도로 폭은 5m로 차량 2대가 충분히 지나갈 수 있다. 교통전문가(교수)·경찰은 도로 폭을 5m로 만든 것은 처음부터 불법 주·정차를 묵인해준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 왼쪽의 인도는 입간판·오토바이등이 점거해 사람 통행도 힘들다.

3. 한 승용차가 쌍용대로 양돈농협사거리 이면도로에서 불법으로 역주행을 하고 있다. 노동부사거리에서 두정역 방향으로 진행하던 차량들이 불법으로 유턴한 뒤 이면도로로 진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방통행을 알리는 표지판이나 도로표시가 없다. 이 곳 인근엔 초등학교가 있어 학생들이 등·하교 때 불편을 겪는다.

4. 천안시 성정동사거리. 북부대로(북쪽) 방향 이면도로가 불법 주·정차 차량들도 통행이 불가능하다. 왼쪽 인도 입구를 화물차량이 가로막아 자전거를 탄 학생이 인도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면도로로 가고 있다. 이면도로는 본래 차량의 진행만 가능하지만 이 곳은 차량과 자전거, 보행자가 뒤섞이면서 하루 평균 2~3건의 사고가 발생한다.

글 = 신진호 기자, 백경미·조민재 인턴기자
사진 = 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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