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참회·反유대인 옹호 두얼굴의 독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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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9일로 유대인 대학살 60주년을 맞은 독일엔 과거사 반성을 위한 갖가지 행사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과거사 반성행위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일어나는 등 과거사 문제에 두갈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1938년 11월 9일. 독일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날 밤의 악몽을 잊을 수 없다.

당시 '크리스탈 나흐트' 라는 이름의 반 (反) 유대 프로그램으로 1천여개 유대교 회당이 불타고 7천여개 유대인 기업체가 약탈당했다.

수십명의 유대인들이 살해되고 공동묘지와 병원.학교.가정 등이 피해를 봤다.

이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유대인 탄압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와 뉴욕타임스지, 영국의 인디펜던트지 등 세계 주요 언론들은 10일 과거를 잊고 미래로 가려는 독일에는 강요된 반성에 반발하는 상반된 두얼굴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과거반성 =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은 9일 베를린에서 열린 반유대운동 60주년 행사에서 "반유대운동의 시작은 독일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의 하나다.

우리들은 항상 이를 기억해야만 한다" 며 다시금 독일의 과거를 반성했다.

그는 "과거를 잊으려는 위험스런 움직임이 독일내에 있다" 는 경고도 했다.

헤어초크 대통령은 "히틀러의 제3제국 범죄에 관해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젊은 사람들이 당시 사태를 이해하고 올바른 결론을 내리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독일내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인 이그나츠 부비스도 이 자리에서 "독일이 현재 당면한 문제는 일종의 과거부정이다.

반유대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지적 (知的) 민족주의를 추진하는 운동이 분명히 벌어지고 있다" 고 지적했다.

작센주에선 이날 주지사.주의회의장 등이 모여 2차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대교회당 준공식을 가졌다.

◇ 반발기류 = 하지만 독일내 상당수 지식인들은 헤어초크식의 과거반성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달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서 대상을 받은 독일의 문호 마르틴 발서는 "이 시대의 다른 목적을 위해 과거 나치정권의 잘못이 계속 이용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과거 잘못을 영속화하는 일이며 새로운 세대에 고통을 주고 있다" 고 연설했으며 참석자들의 열렬한 지지의 박수를 받았다.

부비스도 "독일의 많은 엘리트 사이에 반유대주의의 기운이 고조되고 있다" 는 지적을 했다.

잘못된 과거를 잊지말자는 목소리와 과거보다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는 독일 전후세대 사이의 갈등이 과거사를 대하는 독일의 현주소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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