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씨 미발표 데생 전시전 열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김환기의 미발표 데생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환기미술관의 기획 시리즈 '김환기 데생전' 이 드디어 결실을 보았다.

스케치북 상태로 창고 안에 잠들어있던 김환기의 데생집 40여권에 묻은 먼지를 털고 빛을 비추는 이 기획전은 지난 96년 '김환기 데생집' 출간과 함께 시작됐다.

작년까지 두번의 전시로 65년부터 69년까지를 정리한데 이어 이번 전시 (12월 20일까지 환기미술관. 02 - 391 - 7701)에는 70년부터 74년까지의 뉴욕시대 대표작을 추려서 보여주고 있다.

이 전시는 이전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김환기의 작가정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작가는 언제나 그리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방대한 작업량에 일단 놀라게 되고, 그린다는 기본에 충실한 자세에서 감동을 느낀다.

데생이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한편 작품을 그리기 위한 전 단계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장르인 것을 김환기의 데생처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밑그림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던 당시 시대적 분위기, 최소한의 표현수단을 특징으로 하는 미니멀리즘의 유행으로 그린다는 행위가 퇴색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데생 개인전을 열만큼 김환기는 데생과 유화를 동등한 장르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완성된 유화와는 달리 작가의 생각이 미완성의 상태로 그대로 드러나있는 데생작업을 통해 이 시기 김환기의 작품세계를 보면 전면적인 점화 (點畵)가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오광수 관장의 분석대로 출품작들은 "화면 하나 가득 김환기 특유의 푸른 빛 점들이 균질적으로 메워져가다 점차 유동적인 구성을 시도하는 과정, 즉 유화에 나타나는 변화 양상" 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환기 특유의 60년대말 십자구도 작품과는 또 다른 간결하면서도 운동감이 넘치는 점선의 율동에서 그의 또 다른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