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럼-10만원권 필요한가]김정수 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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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현재 "고액권을 발행해야 한다" 는 국회주변의 최근 주장이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는 주장 공히 수년동안 진행되어온 논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액권 발행 주장은 ▶경제규모와 소득증대, 그리고 물가상승에 따라 거래단위가 늘어났고 ▶10만원권 수표가 돈처럼 널리 쓰이고 있는데 반해 그 비용과 불편이 엄청날 뿐 아니라 ▶개인정보가 누출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다.

또 ▶외국에 비해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화폐의 종류가 적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반대로 시기상조론은 고액권을 발행하면 ▶인플레 심리를 자극하고 씀씀이를 늘릴 뿐 아니라 ▶음성거래를 조장하고 ▶비리수사 등에 필요한 자금추적에도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 그리고 ▶전자결제가 늘어나 현금수요가 줄어든다는 점 등을 내세워 왔다.

발행주장은 고액권 사용의 편리함에, 시기상조 주장은 고액권 사용의 잠재적 병폐에 초점을 맞춰 왔다.

따라서 고액권발행 주장은 경제적 현실성을 감안하는데 강점이 있었으나, 인플레와 음성거래 조장 가능성이 항상 약점이었다.

반대로 고액권 발행의 반대주장은 '경제정의' 내지 투명경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명분상 우위를 보여온 대신, 경제적 현실을 무시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그동안은 발행반대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경제는 늘 거품경제의 우려와 인플레이션 위험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반대다.

주변여건이 고액권발행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재정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불경기속에 빠져 있어 인플이션 걱정은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줄곳 고액권발행을 반대하던 한은도 총재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고액권발행을 적극검토하겠다" 고 밝힘으로써 역전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액권 발행의 남은 걸림돌은 '음성거래 조장' 위험이다.

따라서 자금세탁방지법 제정을 계속 고액권 발행의 전제조건으로 삼을것이냐, 아니면 경제적효과에 국한시켜 고액권발행을 강력히 추진할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로 요약될수 있다.

김정수 전문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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