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이회창총재 회담 성사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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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대통령의 중국 방문 (11일) 전에 총재회담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여야 지도부는 그 성사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이회창 한나라당총재의 판문점 총격사건에 대한 4일자 반박과 이에 대한 金대통령의 불쾌감 표출로 뒤틀릴 상황에 처하자 양측은 총재회담의 필요성이 더하게 됐다며 서둘렀다.

회담은 결국 청와대의 지원아래 양당 총장이 물꼬를 트고 양당 총무가 마무리하는 수순으로 성사됐다.

○…회담 전날인 8일에도 여야는 회담 후 발표될 합의문 내용을 놓고 진통을 거듭했다.

한화갑 (국민회의).박희태 (한나라당) 총무는 8일 세차례나 만나 합의서 가안 (假案) 을 협의했다.

총무들은 일단 1차 협상 (낮 12시)→지도부 보고→2차 협상 (오후 4시30분) 을 통해 오후 5시30분쯤 합의서 (가안) 도출에 성공. 한화갑 총무는 조세형 총재권한대행과 청와대측에 2차 협상 내용을 보고, 바로 추인을 받았으나 한나라당쪽은 이회창 총재가 총풍사건. '표적사정' 문제와 경제청문회 실시시기를 못박는 데 대해 강력히 거부, 한때 일이 틀어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양 총무는 공식발표는 9일 총재회담에서 나와야 한다는 이유로 "합의서 내용을 합의했다는 말 외엔 밝힐 게 없다" 며 함구했다.

○…성사의 결정적 전기는 7일 오전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나온 이회창 총재의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은 검찰수사를 지켜본다" 는 발언. 李총재는 전날 밤 국민회의 정균환 (鄭均桓) - 한나라당 신경식 (辛卿植) 총장이 회담 전제조건으로 합의한 이 대목에 대해 이날 아침까지 거부의사를 보였다.

입장 표명 문안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구할 생각을 하겠는가' 라는 전제와 '강제수사로 사실왜곡이 있어선 안된다' 는 부분을 포함시켰지만 완강히 버텼다는 후문. 辛총장과 朴총무는 7일 李총재와 조찬을 함께 하면서, 그리고 여의도 당사로 출근하는 李총재의 승용차에 동승하면서 집요하게 설득했고, 李총재는 "정 그렇다면 대변인을 시켜 입장을 표명하자" 고 한발 양보했다.

이에 朴총무 등이 "직접 해야 한다" 고 우겼다는 것. 결국 李총재는 회의에서 이를 언급했고 국민회의는 이 사실을 청와대에 보고, 회담이 성사됐다.

○…국민회의쪽에선 趙대행이 발벗고 나섰다는 전언이다.

과거엔 공식 접촉창구인 韓총무에게 대야협상을 일임하고 결과만 보고 받는 식으로 대응했으나 이번에는 한나라당 소속 신상우 (辛相佑) 국회부의장을 가운데 두고 李총재와 직접 교감 (交感) 했다.

이런 태도는 총재회담 자체가 갖는 비중뿐 아니라 金대통령의 특명사항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당 주변의 분석.

○…여야간 협의는 두 갈래 채널로 움직였다.

한화갑 - 박희태 총무라인과 정균환 - 신경식 총장라인이 그것. 지난달 중순부터 시작된 두 총무간 논의가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자 총장들이 가세했다.

일각에서는 총무라인이 여러 곡절로 문제가 많아 총장라인이 동원된 것으로 풀이. 정균환총장과 신경식총장은 서로의 공격을 자제하면서 합의문건을 만들어 냈다.

남정호.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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