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낙하산인사'계속할 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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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92년 당시 미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페이 빈센트는 26개팀의 소속을 새롭게 바꾸는 '지구 조정안' 을 내놓았다.

그러나 빈센트의 이 조정안은 구단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빈센트가 책상에서 만든 조정안은 실제로 팀을 운영하는 구단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결국 구단주들은 빈센트를 불신임했고 그는 커미셔너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현재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를 맡고 있는 버드 셀릭은 지난해까지 밀워키 브루어스 구단주였다.

빈센트의 '무장해제' 가 시사하는 바는 메이저리그의 현실적인 주인이 누구인가다.

국내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8개 구단은 저마다 1년에 1백억원 가량의 돈을 들여, 그것도 적자 보면서 구단을 운영한다.

그들은 분명 프로야구의 주인이다.

그러면서도 프로야구의 수장을 주인인 자신들이 뽑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국야구위원회 (KBO) 는 그동안 프로야구 구단주인 대기업과 정치권의 '떨어질 수 없는 사이' 를 중매 (?) 라도 하는 듯 이제까지 정치권의 낙하산 총재를 모셔왔다.

지난 9월 구단주회의에서 OB 박용오 구단주가 KBO총재로 추대된 것은 이제 프로야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더이상 남의 손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구단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인식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4일 문화관광부가 구단주의 KBO총재 겸임을 반대하고 나선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구단주가 총재를 맡으면 중립성이 결여된다" 라는 지적에 한편 수긍하면서도 과연 문화관광부가 프로야구의 현실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지 의문이 가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는 거듭 깨기위한 과정이다.

그러나 '낙하산 인사' 를 위한 시행착오는 더이상 반복돼서는 안된다.

만약 메이저리그처럼 국내 구단들이 KBO와 상관없이 다른 프로야구 리그를 만들겠다면 어쩌겠는가.

그때도 정부에서 "총재는 우리가 임명해야 한다" 고 나설 것인가.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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