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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하도 봐 무덤덤 … 10대 야한 셀카 늘어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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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유해정보심의팀 권주희(29)씨와 팀원들이 서울 목동 사무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성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음란 동영상들이 규정에 어긋나는지 살펴보고 있다. [최승식 기자]


평범한 사무실인데 뭔가 이상하다. 책상 위 컴퓨터마다 음란물이 떠 있다. 그것도 보통 음란물이 아니라 하드코어 포르노다. 하지만 음란물을 보는 직원들은 무표정하다. “처음에야 놀랐지만 이젠 익숙해서….” 한용민(30)씨는 여성의 알몸 사진을 무심하게 훑어보곤 URL(사이트 주소)을 복사했다.

근무 시간에 합법적으로 음란물을 보는 곳.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유해정보심의팀이다. 이 팀에 근무하는 7명의 직원은 우리나라 인터넷의 모든 음란·폭력물을 감시한다. 유해 사이트를 찾으면 영상을 증거로 확보한 뒤 심의위원회에 올린다. 그러면 위원회에서 심의규정과 관련법에 의거해 접속 차단 또는 인터넷 이용을 해지시킨다. 서울 목동의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음란물과의 싸움을 지켜봤다.

“만리장성에서 벽돌 하나 빼는 느낌이랄까요.” 유해정보심의팀 김광수(34)씨는 “아무리 단속해도 음란물 사이트가 줄지 않는다”며 이렇게 표현했다. 이 팀이 2003년부터 올 6월까지 음란·선정성 정보로 분류해 차단·해지를 요구한 사이트는 약 14만 개. 매년 수천~수만 건을 추가로 차단 목록에 올리지만 새로 생겨나는 사이트는 파악할 수 없을 정도다.

갈수록 음란물의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해외에서 아동의 성행위를 담아 찍은 아동 포르노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국내에선 청소년들이 자신의 누드나 성관계 장면을 찍은 ‘음란 셀카’ 동영상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국내 한 정보보호 업체가 올 들어 4월까지 등록한 음란물 동영상 13만여 건 중 휴대전화 셀카 동영상이 1만8000여 건(14%)이고, 이 중 청소년이 등장하는 경우가 20% 정도다. 유해정보심의팀 최은희 팀장은 “호기심에 셀카를 찍은 청소년들이 음란물 산업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매매 사이트도 폭증한다. 지난해만 해도 성매매 알선으로 적발돼 접속이 차단된 사이트는 281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349개가 적발됐다. 한용민씨는 “17~18세의 미성년자들이 ‘조건 만남’을 내걸고 성매매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경찰이 성매매 업소를 단속한 여파가 인터넷에 몰려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해 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해도 효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업자들이 주소만 조금 바꿔 새 사이트를 연다는 것이다. ‘sexy12.com’이라는 사이트를 차단하면 ‘sexy123’이라는 주소를 새로 만드는 식이다. 최 팀장은 “인터넷은 도메인만 사면 누구나 사이트를 개설할 수 있어 문제”라며 “사업자가 사이트를 열 때 실명·연락처만 제대로 등록하게끔 해도 시정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음란물을 보다 보니 직원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7명의 직원이 20대 후반~30대 중반이지만 공교롭게도 결혼한 직원은 한 명도 없다. 최 팀장은 “이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삼는 음란물을 보다 보니 이성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는 직원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이 부서로 온 이모(36·여)씨는 “남성혐오증까지는 아니지만, 몰라도 될 걸 너무 많이 알게 됐다는 생각은 든다”며 “수위가 높은 동영상을 보면 그 생각에 종일 시달린다”고 했다. 실제로 2007년 직원들을 상대로 한 정신 감정에서 이 팀의 직원들은 대부분 ‘정신적 피로감이 심각해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정봉 기자

유해정보심의팀원들의 말말말

김광수(34)씨/음란물 심의 경력 1년2개월

“중·고등학생들이 성매매에 나서기 위해 음란 사이트를 만들기도 한다. 막아도 막아도 끝이 없어 안타깝다.”

한용민(30)씨/음란물 심의 경력 9개월

“신혼 생활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 성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모(36·여)씨/음란물 심의 경력 9개월

“ 가죽옷 입은 남자를 보면 ‘성적 취향이 이상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음란물 때문에 생긴 선입견이다.”

우리 아이, 음란물 중독을 막으려면

① 터놓고 대화한다

- “저런 장면을 보면 기분이 어때?” “주위 사람이 실제로 저러면 어떨 것 같아?” 같은 질문으로 음란물의 성 세계가 왜곡됐다는 것을 인지하게 해야

② 최신 매체를 배운다

- 보호자가 컴퓨터·휴대전화는 물론 MP4, PMP 등 동영상 기기를 공부해 집안 IT 기기의 콘텐트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 자주 들어가는 사이트·카페 등도 체크해야

③ 강압적인 차단은 피한다

- 컴퓨터에 차단 프로그램을 깔아도 자녀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음란물을 접할 수 있다. 자녀와 대화해 차단 프로그램에 대해 동의를 구해야

④ 늦은 밤 컴퓨터는 자제시킨다

- 청소년 사이 음란 화상채팅이 주로 일어나는 시간은 오후 10시~오전 2시다. 컴퓨터를 거실에 놓고 주로 낮에만 쓰게끔 해야

⑤ 중독이 심하면 행동 치료를 병행

- 음란물 중독이 심하면 상과 벌을 써서 인터넷 접속을 막는다. 일정 시간 음란물을 보지 않거나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용돈이나 상을 주는 방식

김승영 인턴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 도움말 :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 소장, 학부모정보감시단 이경화 대표, 전남대 심리학과 윤가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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