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오르는 아시아적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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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1년간 아시아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며 그 실체까지 의심받아온 아시아적 가치가 부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유시장경제 만능' 을 주창하는 서구의 논리가 반드시 옳지는 않다는 비판의 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국경 없이 각국을 넘나들며 세계적 경제위기를 부추긴 헤지펀드 (단기성 투기자금) 를 규제하자는 주장이 거세진 것도 아시아적 가치 재평가 움직임에 일조했다.

지난 14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인도 출신 아마르티아 쿠마르 센 교수는 "교육.의료분야의 막대한 투자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업적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 이라며 서구의 아시아 폄하 분위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대표적인 아시아 가치 옹호자인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달초 "자유시장 경제는 완전히 실패했다" 고 선언하고 자국에 고정 환율제와 자본규제 정책을 도입했다.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국가 주도의 아시아적 경제관에 입각, 정면승부에 들어간 것이다.

결과는 일단 성공이다.

곤두박질하던 주가는 2개월동안 60%이상 급등했고 외환보유액도 2백26억달러로 8월보다 27억달러 증가해 당초 마이너스 3~5%로 예상했던 내년 경제성장률을 3~5% 성장으로 수정하는 견해까지 나왔다.

무모한 시도라고 비판하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사도 "대체로 통화관리시스템이 잘 굴러가고 있어 말레이시아의 경기후퇴는 내년초 끝날 것" 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일본 대장성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신原英資) 재무관은 "마하티르는 더 이상 이단이 아니다.

세계의 상황이 바뀌고 있다" 고 칭찬했다.

중국과 인도는 아시아 위기라는 격랑속에서도 비교적 안정된 경제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대표적인 정부 주도 경제인 중국경제는 올해 7%가량의 성장을 이룰 전망이고 서구가 주장하는 '정실 자본주의 (crony capitalism)' 가 판치는 인도 경제도 6.5% 성장은 무난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 8월 러시아에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은 서방 투기세력들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홍콩 공략에 나서자 중국.대만 등 '중화경제권' 이 힘을 합쳐 방어에 성공한 것도 아시아적 가치의 승리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의 재등장에 대한 반론과 우려도 상당하다.

아시아의 긍정적인 면은 인정하더라도 독재정치나 연고주의.정경유착 등이 아시아적 가치로 둔갑해 옹호돼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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