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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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6장 두 행상 ⑫

"이봐요, 조씨. 조용조용 얘기합시다. 왜 목청을 높이고 그래요. 여기가 장바닥인 줄 알아요? 떡 줄 놈은 재 너머 있는데, 우리끼리 꼴이 이게 뭡니까?" "조용조용 얘기하게 됐습니껴? 응당 시끄러울 줄 알고 다방으로 불러들인 것 아입니껴?"

"조씨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이겠지만, 우리 속담에도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습니다.

자기 수준이 어디쯤 된다는 정도는 알고 처신해야지요. 내가 보기에는 승희씨가 어떤 사연이 있어서 젊은 나이에 신세 고단한 행상으로 나서긴 하였지만, 거동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고등교육을 받은 여자가 틀림없고, 따라서 조씨 같은 사람이 결혼하자고 졸라 보았자, 호락호락하게 끌려들 여자도 아니란 것입니다.

장돌뱅이 노점상이라지만, 직업도 뚜렷하고 돈벌이도 착실한 여자가 장래도 불투명한 시골사람과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을 것입니다.

남자에 궁핍을 느끼고 있는 여자였다면 진작 결혼했을 테지요. "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여기서 서울까지가 멀긴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서울 도착해서 만나볼 사람 만나 볼일 보고 당일로 돌아와 집에서 잘 수 있을 만큼 편리한 교통이라요. 시골사람이라꼬 깔보는 것은 조선시대때 이바구라요. 우리 삼촌도 산골 출신이지만 대학까지 나온 수재여서 똑똑한 걸로 따지면 승희씨한테는 꿀릴 게 없고, 허우대도 나처럼 촌티를 벗어서 서울 광화문통에 내놔도 촌놈이라꼬 괄시받을 처지는 아니라요. "

"여기 엉뚱하게 조씨 삼촌 얘기가 왜 나와야 합니까. 내가 조씨 삼촌이란 얘깁니까?" "왜 이러십니껴. 삼촌 얘기가 안나오게 됐습니껴? 내가 장가들라는 게 아니라 올해 마흔한살을 넘긴 우리 삼촌 배필 될 여자를 찾고 있는 기라요. 나도 서른일곱살이 되어서 배필을 구해야 하는 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지만, 마흔살을 넘긴 삼촌을 두고 염치없게 장가갈 엄두나 하겠습니껴? 내가 시방 배선생처럼 장난하고 있는 줄 압니껴?"

조창범의 한마디는 배완호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당사자 아닌 자신의 삼촌을 위해서 승희에게 접근하려 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닌 삼촌의 배필 될 여자를 찾고 있는 조창범의 거짓말 같은 진솔함은 배완호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배완호는 질끔했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삼촌을 위해서 이토록 많은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조창범이가 갸륵하게 보였다기보다는 미욱한 위인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오히려 그가 당사자가 아니란 고백에서 해법을 찾아낸 듯한 기분이었다.

잠시 고개를 숙이며 숨죽이고 있던 배완호는 정색하고 물었다.

"조씨 삼촌이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사요?" "대학 나와서 곧장 시골집으로 돌아와서 농사 지으면서 포시랍게 (요족하게) 살고 있는 분인데, 삼년 전에 상처하고 홀아비로 견디고 있는 분이라요. 슬하에 국민핵교 댕기는 여식을 두었는데, 이 지지바 (계집애) 는 영특해서 저 반에서 맨날 일등만 합니더.

승희씨도 저만한 나이에 물어보지 않아도 숫처자는 아닐 낀데, 두 사람 모두에게 그런 애꿎은 과거사가 있을 거니까 허물이란 것은 서로가 피장파장이 아니겠습니껴. 그런 분을 조카되는 처지로서 만사 제쳐두고 중매설라 카는데, 대전에 마누라까지 있다는 배선생이 닭장에 뛰어든 쪽제비처럼 잘돼가고 있는 남의 혼사에 뛰어들어서 훼방을 놓고 있다면, 도덕적으로 용납 못할 일이 아닙니껴. 철면피도 유만부동이지 세상이 아모리 난장판이고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 카디라도 동배간으로 지내는 배선생이 그래서야 사람 대접 받겠습니껴?"

"대학 나와서 시골서 농사나 짓고 있다면, 조씨 삼촌도 어지간히 미련한 위인이구만?" 그때였다.

진득한 성품인 조창범도 더 이상은 참지 못했던지, 두 주먹을 부르쥐고 배완호를 갈겨줄 듯이 휘두르며 일갈이었다.

"이 인간이 시방 뭐라고 씨부려 쌓노. 수채궁게 처박고 모가지부터 칵 밟아 뿔라. "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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