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의 마음 엿보기]부모 증오하는 아이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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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15면

일러스트=강일구

최근 장모를 죽인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사형선고에, 어머니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청년의 자백, 재산 문제로 다투다 70대 아버지를 선풍기로 때려 숨지게 한 40대 아들, 엄마들을 저주하는 네티즌들의 ‘엄마 안티 카페’까지, 패륜적 행위와 관련된 기사들이 연거푸 등장했다. 현실이 공포물보다 더 공포스러운 듯 보인다.

영국에서도 부모를 죽이려는 시도를 아무 죄의식 없이 그대로 비디오로 찍은 소녀가 있었고, 일본에서는 2001년 이후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유튜브나 마이스페이스 뮤직의 부모 살해 사이트에 접속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존속살해는 심리적으로는 실제로 어려서 학대를 많이 받았거나,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차가운 반사회성 인격장애 등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부모에게 불만이 있어도 독립적으로 살 능력이 없고, 집을 나가면 부모가 법적으로 다시 찾아오게 되어 있어 부모를 죽이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성인 가해자도 대부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있어 청소년과 유사하게 그 심리발달이 고착된 채 부모와 병적인 공생관계를 유지한다. 자신이 벌어다 준 돈을 게임에 빠져 탕진한 어머니를 살해한 경우나, 돈 못 번다는 핀잔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이가 그 예다.

가족이 파괴되고 청소년의 심리적 부담이 커지면서 이런 패륜 행위가 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존속살인은 사실 오래전부터 주요 문학작품이나 역사적 비극 속에 존재해 왔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살부(殺父) 모티브는 낡아 빠질 정도로 인용된 바 있고, 로마의 키케로는 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은 로스키우스를 변론해 유명해졌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역시 아들의 아버지 살해를 다룬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신 마둑은 어머니 티아맛을 죽이고 영웅으로 재탄생하고,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엘렉트라는 동생과 함께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를 살해한다. 연산군이나 광해군 역시 계모나 할머니의 살해를 도모했다. 스티븐 킹의 소설 '캐리',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에서도 어머니 살해가 중요 플롯이고,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은 어머니 장례식 날 낄낄거리며 성관계를 갖는다.

물론 이와 같은 신화나 이야기 속에서의 부모 살해 모티브는 어디까지나 개인이 독립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 실제 범죄행위와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이나 배우자의 부모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고백하는 이들을 가끔 만난다. 가혹하게 학대받거나 조종당하여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이들이다. 부모가 져야 할 부담을 대신 떠맡기에 삶 자체가 지긋지긋한 이들도 있다.

자녀를 공부하는 기계 다루듯 담금질만 하는 어머니, 술 마시며 소리나 지르는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분노는 상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겉으로는 착한 자녀·사위·며느리지만, 몰래 부모를 죽이고 싶다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분노의 뿌리가 깊고 숨겨져 있을 때는 전문적 도움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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