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풍'사건 결국 이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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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총풍 (銃風)'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보면서 참으로 사건내용이나 처리방법이 허망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달간의 검찰 수사가 처음 구속한 3명을 단순하게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됐으니 안기부 송치 때보다 사건내용이나 규모가 축소된 셈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총격요청과 배후 관련인데 검찰 수사는 두가지 모두 석연치 않다.

먼저 총격요청 부분의 범행사실을 보면 세 사람이 국내에서 만나 대화를 주고받은 사실에는 '총격' 이란 말이 들어 있지만 정작 북한측과 접촉하면서 부탁한 내용에는 이 부분이 없다.

발표문을 보면 2차 접촉때 북한측 인사에게 '판문점에서 무장군인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무력시위를 하여 긴장을 조성하는' 것을 요청했다는 한 문장이 전부다.

이 수사 결과대로라면 이들은 북한에 총격요청을 한 사실이 없는데도 어째서 이 사건이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이라고 이름지어졌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 이들이 단순히 국가보안법 상의 '회합 통신죄' 만으로 기소된 것은 당초 이 사건이 지나치게 과대포장됐다는 의미가 아닌가.

가장 관심을 끌었던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의 배후 관련 부분도 분명치 않다.

검찰 수사 결과로 보면 일단 李총재나 측근인사들의 배후 관련은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다만 검찰은 그의 동생 이회성 (李會晟) 씨 등에 대해서는 사전보고나 5백만원의 경비지원 혐의에 대해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검찰이 사건의 핵심 부분을 '계속 수사' 라는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사건의 경우 안기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사를 해왔고 피의자 구속후 본격 수사기간만 따져도 50일 가깝다.

또 송치후 서울지검 공안1부 검사 전원이 투입된 집중 수사였으니 결코 인력이나 기간이 모자랐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사건은 북한이 관련된데다 성격으로 보아 물증이나 북한 관계인물의 진술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수사상의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이같은 사건일수록 원칙을 지키는 수사가 중요한 법이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 결과는 분명한 범죄사실로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보다는 배후 관련자들의 의혹 부분과 정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어 지나치게 정치권을 의식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총풍사건은 단순한 형사사건이라도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교훈으로 남겼다.

그동안 이 사건으로 정쟁을 일삼았던 정치인들은 잘못을 깨닫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아울러 검찰은 이 사건의 고문 여부에 대한 수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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