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요리]호박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어때요, 정말 탐스럽죠?" 냉장고를 여는 정영임 (鄭英任.48.서울목동아파트) 씨 손엔 어느새 짙은 겨자 빛으로 농익은 늙은 호박이 들려 있었다.

네 식구 아침식사는 물론 손님대접을 위해 죽을 끓이느라 4분의 1쯤 잘라냈다는 데도 남은 반쪽이 어른 얼굴만하다.

전북 익산에 사는 鄭씨의 친정어머니가 텃밭에서 손수 가꿔 지난 추석 때 보내준 것이라고.

"저나 여동생이 출산했을 때 어머니께선 '산후 부기를 빼는 데는 호박물이 최고' 라며 속을 긁어낸 호박에 꿀을 넣고 쪄서 우러난 물을 주시곤 했어요. 그땐 너무 먹기 싫어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호박까지 구석에 처박아놓을 정도였죠. "

그런 그를 '호박예찬론자' 로 바꿔놓은 것은 어느날 뷔페식당에서 만난 호박죽. '명색이 가정과 전공' 인지라 겁없이 조리에 덤벼들어 이리저리 솜씨를 낸 鄭씨의 호박죽은 처음부터 성공이었다.

호박이라면 나물이나 전도 잘 먹지 않던 남편.아이들까지 호박죽은 너무나 좋아하더라고. 이에 힘입어 호박범벅 등 다른 호박요리도 시도해보았지만 역시 딸의 '다이어트식품' 이자 남편과 아들의 '건강요리' 인 호박죽 인기를 따르지 못했다.

무엇보다 호박죽은 물의 양을 너무 되거나 묽지 않게 맞추는 것과 눋지않게 두툼한 냄비와 나무주걱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찹쌀가루는 그냥 물에 풀어 사용하거나 조그맣게 새알심을 두어도 좋고, 팥은 기호에 맞춰 안 넣어도 된다.

소금 간은 미리 하면 죽이 풀어지므로 먹기 전에 하는 것이 요령. 경험상 둥근 호박보다는 납작하게 생긴 것이 더 달고 맛있다고 鄭씨는 덧붙인다.

"지금이 제철이라 5천~6천원짜리 늙은 호박 하나면 네 식구가 여러 끼 먹을 수 있어요. 한끼 해먹고 남은 호박은 랩에 씌워 냉장고에 두던가 아예 삶아 으깬 뒤 냉동보관했다 사용하면 좋아요. " 鄭씨가 내미는 호박죽이 달착지근하게 입안에 감긴다.

누런 호박넝쿨 사이에 서 계신 鄭씨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하다.

김정수 기자

[재료.만드는 법

▶재료 (4~5인분) =늙은호박5백g, 찹쌀가루1/2컵, 물5컵, 삶은 팥2백g, 설탕.소금 약간씩

▶만드는 법 = ①호박을 잘 씻어 속을 깨끗이 파낸 후 껍질을 벗겨 푹 무르게 삶아 으깬다.

②찹쌀가루를 물1/4컵 정도에 개어서 ①에 넣고 끓인다.

③한소끔 끓으면 삶은 팥을 넣고 눋지 않도록 나무주걱으로 잘 저어가며 한 번 더 끓인다.④먹기 직전에 소금과 설탕으로 간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