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벨상과 경제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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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벨경제학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는 없었다.

스웨덴중앙은행이 지난 68년 기증한 상금으로 69년부터 시상되고 있다.

올해까지 수상자 43명중 미국인이 26명으로 60%를 차지한다.

미국경제가 맥을 못 추던 80년대 "노벨경제학상은 미국이 석권하면서도 현실경제는 왜 이 모양이냐" 는 핀잔들도 적지 않았다.

시상기준은 경제이론의 정책적.사회적 응용보다는 경제이론에의 '과학적 공헌' 이다.

따라서 비판론자들 가운데서는 난해한 수식 (數式) 으로 이론놀음을 일삼는 학자들보다 물가안정과 국민경제의 성장에 현실적으로 기여한 공로자에게 상을 주는 것이 노벨의 유지 (遺志) 를 더 잘 살리는 길이라는 주장도 편다.

인플레이션을 퇴치한 미국의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 마르크의 신화를 창조한 독일중앙은행, 경제대국 일본의 설계자에게 상을 주자는 논리다.

올해 수상자인 인도출신 아마르티아 센 교수는 그 어느 해보다 선정의미가 각별하다.

'동양인으로 첫 수상' 이라는 인종적 배경은 별 의미가 없다.

그는 경제학계의 '옥스퍼드 맨' 이자 오래전부터 수상후보로 지목받아 온 세계적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경제학계의 철학자' 로 통한다.

좁고 각박한 합리주의를 넘어 윤리와 복지를 중시한다.

'가난과 식량기근의 체계적 원인분석에 도움이 되는 후생경제학 연구에 큰 공헌' 이 그의 수상이유다.

그는 9세때 인도 벵골의 대기근을 겪었고 그 가난을 퇴치하기 위해 경제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마침내 세계의 불평등문제에 주목한 인물에게 노벨경제학상이 돌아갔다" 고 유엔식량농업기구가 이례적 환영성명을 발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세계경제는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엇갈린 진단과 처방으로 논의와 혼란만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 오늘의 경제학계 현실이다.

더구나 작년 공동수상자인 미국의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스 박사가 현재 세계 금융혼란의 주범인 헤지펀드 운용에 이론을 제공함은 물론 실전에 직접 참여해 국제적 비난의 표적으로 올라 있는 상황이다.

'말 없는 약자들의 대변자' 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한 까닭을 헤아릴 만도 하다.

수상자 선정에서 갈수록 현실응용부문을 중시하는 경향이다.

벵골의 대기근이 오늘의 센을 탄생시켰고, 30년대 대공황이 미국경제학계에 인재풍년을 가져왔다.

한국의 현 경제난국이 후일 노벨상수상자를 탄생시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우리 경제학도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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