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아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반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개인적 경험으론, 몇 년 전만 해도 싸구려 상점에서 물건 값을 깎자고 덤벼들 때 미국인 가게 주인으로부터 듣던 말이 “중국인이냐”는 질문이었다. 존중이나 존경의 눈빛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인의 얼굴에선 중국의 눈치를 살피는 표정이 역력하다. 우선 미국 대통령부터 그렇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일부 미국인은 중국의 부상에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나는 의견을 달리한다”며 “미·중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라고 개막 연설을 시작했다.

미·중 대화를 전하는 미국 언론의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마치 은행가가 과도한 채무를 진 고객의 집을 방문한 것처럼 중국 대표단이 미측에 재정적자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가을 이후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 됐다. 미국 채무 10달러 중 대략 1달러는 중국이 갖고 있다”고 전했다. 8015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액을 설명하는 기사에서다.

중국계인 스티븐 추 박사가 미 정부에서 에너지 장관에 오르고, 전임 정부에서 일본 전문가가 맡았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에 중국통인 제프리 베이더가 발탁된 것도 모두 올해 벌어진 일이다. 그러다 보니 ‘차이메리카(Chimerica)’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미국이 주도해온 세계 질서가 미·중 양강구도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며칠 전 워싱턴에서 만난 한 한반도 전문가는 “지난 주말 조지 소로스를 만나기 위해 뉴욕을 다녀왔다”면서 “한국 투자를 계획 중인 소로스가 한반도 전문가 몇 사람을 불러 북한 핵과 한반도 정세를 물었다”고 털어놨다. 이 전문가는 “중국의 향후 입장과 태도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열쇠라는 게 그날 대화의 결론이었다”고 소개했다.

경제위기에 몰린 미국은 중국의 힘을 인정하고 세계 경영의 책임도 나누겠다는 쪽으로 자세를 잡고 있다. 문제는 한반도가 두 강대국의 힘이 직접 부딪치는 교차로라는 점이다. 그 때문에 한반도는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신뢰를 쌓아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중 관계가 그다지 좋았다고 보기 어려우니 더욱 힘든 과제다.

최상연 워싱턴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