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죄를 짓고 있는 언론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열심히 공부한들 받아주는 곳이 있는가.

넘치는 활력을 소화하고 창의력을 시험해 볼 무대가 있는가.

1년 혹은 2년을 기다리면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장담할 사람도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의 선배, 그들의 선세대 (先世代) 인 우리가 그들에게 미안한 것은 그뿐이 아니다.

많은 빚을 그들에게 떠넘겨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세대는 후세대에 죄를 짓고 있는 셈이다.

나라의 빚은 외환위기가 오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총외채는 국제금융기관부채 8백70억달러를 포함해 1천5백억달러. 이중 장기외채가 75% 정도고 이자율은 국제금리보다 높다.

나라빚은 외국에만 진 것이 아니다.

이미 발행했거나 발행 예정인 국채는 72조원에 가깝다.

한해 정부예산과 거의 맞먹는다.

신문의 경제뉴스는 온통 빚 얘기다.

몇 개만 들어보자. 세계은행은 이달말께 10억달러의 차관을 승인하고 12월에 10억달러를 추가로 제공한다는 보도는 며칠전 뉴스다.

이로써 세계은행은 70억달러를 우리나라에 지원한다.

도입 조건은 5년 거치 15년 분할상환이다.

말도 많은 기아자동차 부채는 총자산보다 5조원이 더 많은데 이중 2조9천억원의 빚을 탕감해 팔려 해도 낙찰이 안됐다.

그래서 나머지 2조2천억원마저 탕감해 3차 입찰을 검토하고 있다.

5대 그룹의 빅딜에서도 20조원의 은행빚을 출자로 전환해 달라, 나머지 대출금도 10년 정도 거치의 상환유예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금융기관을 정상화하기 위해 은행의 부실채권을 32조원 어치 사주고, 은행자본금을 늘리는데 32조원을 쓰기로 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 64조원으론 부족해 90조원은 쏟아넣어야 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빚 탕감.출자 전환.부실채권 인수…. 이 돈은 누가 대는가.

빚을 낸 정부 돈이고 국민의 세금이다.

그것도 지금세대가 모두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을 다음세대에 떠넘기는 것이다.

내년 정부예산안을 보면 채권에 대한 이자비용으로 이미 7조7천억원이 책정돼 있다.

2000년부터는 국채발행에 따른 이자비용이 연 8조6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

빚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는 말이 있다.

정부재정의 적자는 장기화가 불가피하고 빚 갚기도 오래 걸리게 마련이다.

나라의 빚이 도로.병원.학교 등 사회간접자본으로 쓰인다면 그 투자시설물을 후대 (後代)에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필요한 빚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빚을 내서라도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고통을 덜기 위해 빚을 내고 후세대에 남겨주는 것 없이 빚만 떠넘기는 지출은 신중해야 한다.

이런 지출을 '제너레이셔널 세프트' (Generational Theft.세대간 절도행위) 라 지칭하는 경제학자가 있지만 우리말로 한다면 세대착취 (世代搾取) 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기업이 잘못해 적자를 낸 것, 은행이 돈을 잘못 빌려줘 거덜난 것, 한 시절 흥청거린 소비문화…. 이런 것들의 뒤치다꺼리를 후세대에까지 넘겨주는 빚잔치. 그래도 어디서 외화차입 교섭에 성공했다면 살 길이 트인 듯이 보도하고, 국채가 발행되면 경제연구소의 보고서들은 국채의 유동성이니, 채권시장의 활성화니 하는 어려운 얘기만 쓰고 있다.

염치없는 빚잔치, 세대착취는 누가 속죄해야 하는가.

대한제국 말기에는 국채보상운동이 있었다.

지금의 나라빚은 경제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해, 그리고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불가피하다.

90년전 국채보상운동이 있었을 때의 상황과는 아주 다르다.

그러나 국채보상운동은 아니더라도 국채 팽창에 대한 반성과 비판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세대착취에 너무 둔감한 것 같다.

영국의 계관 (桂冠) 시인 워즈워스의 시 '내가슴은 뛰노라' 에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는 구절이 있다.

어른들은 자연과 진리에 대한 감동을 아이들보다 덜 갖는 것을 쓴 대목이다.

우리세대가 아이들에게 많은 빚을 넘겨주고 있는 것에 대해 아이들은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고초를 겪어가면서 언젠가는 원망하게 될 것이다.

진학.취업의 고통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을 대하면서 어른들은 연민과 동정심을 가질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짓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깨달아야 한다.

아이들이 원망하기 전에 속죄의 마음만이라도 가져야 한다.

김동익(성균관대석좌교수.언론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